■ Story
작가 아이리스 머독(케이트 윈슬럿, 주디 덴치)과 영문학 강사 존 베일리(휴 본빌, 짐 브로드벤트)는 1950년대 초 옥스퍼드대학에서 처음 만난다. 존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아이리스를 사랑하고 숭배하지만 아이리스의 자유분방한 양성애적 사생활은 그를 번민에 빠뜨린다. 결혼 뒤 40년간 더없이 친밀한 동반관계를 지속하는 아이리스와 존. 그러나 노년의 어느날 아이리스를 습격한 알츠하이머병은 그녀의 명철한 정신을 무너뜨리고, 존은 갓난아기처럼 변한 아내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간간이 되살아오는 젊은 날의 질투와 아이리스에 대한 원망으로 괴로워하면서.■ Review 아이리스는 존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주 먼 곳을 헤맨다. 존은 아이리스를 사랑한다. 그의 눈은 평생 아이리스를 ‘엿본다’. 영화 <아이리스>의 한 장면은 다른 남자와 열렬한 정사를 나누는 아이리스를 훔쳐보는 청년 존 베일리를 보여준다. 영화가 부부의 노년을 비출 때 우리는 비스듬히 열린 서재의 문 사이로 책상에 앉은 아내를 살피는 늙은 존을 본다. 하지만 이 기울어진 관계는 결코 짝사랑이 아니다. 아이리스에게 존은 유일하게 정박할 수 있는 항구이며, 우주 바깥에 존재하는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동화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가끔 홀연히 사라지는, 하지만 언제나 내게 돌아오는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였다.” 재능과 영감으로 충만한 여성 아이리스 머독과 함께한 시간에 대해 존 베일리는 회상록에서 그렇게 썼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그의 ‘아름다운 아가씨’는 나쁜 마법에 걸려 다른 세계로부터 돌아올 줄 모른다. 그녀를 유괴한 것은 알츠하이머의 병마다.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을 보고 동네 술집에 들렀던 평화로운 어느 오후. 아이리스의 정신과 언어는 고장난 턴테이블처럼 헛되이 맴돌고, 허공에서 뜯겨나간 채 너덜거린다.
연극계 출신 리처드 에어 감독의 연출은 침착하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어쩔 수 없이 잔인한 영화다. 언어를 잃어버린 작가의 초상, 더구나 영화 도입부에서 언어의 힘을 그토록 예찬하던 작가가 침묵의 아가리에 산 채로 천천히 먹혀 들어가는 광경은 손가락이 부러진 피아니스트나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발레리나만큼이나 지켜보기에 참혹하다. 그런데 <아이리스>는 존과 아이리스가 처음 만난 젊은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더욱 잔인해진다. 문을 열고도 어디로 갈지 몰라 망연히 서 있는 늙은 아이리스의 어깨 너머에서, 젊은 날의 아이리스는 “당신은 그냥 내 뒤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라고 눈부신 웃음을 뿌리고, 존의 넋을 앗아간 아이리스의 청아한 옛 노래는, 우물 같은 치매의 어둠 속에서 기억의 멜로디를 더듬는 아이리스의 흥얼거림으로 옮아간다. 케이트 윈슬럿의 약동하는 생명력은 주디 덴치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처연함을 발하고 주디 덴치의 텅 빈 눈동자는 케이트 윈슬럿이 던진 빛 속에서 많은 사연을 드러낸다. 때없이 시간을 오르내리는 <아이리스>의 구조는 그래서 ‘회상’이라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가깝고, 주디 덴치와 케이트 윈슬럿은 진정 한몸을 이룬다. <아이리스>의 네 주연은 전기영화가 미더운 배우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한다. 특히 주디 덴치와 짐 브로드벤트의 연기는 카메라 앞의 배우가 눈빛 하나만으로 산을 옮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깊은 슬픔은, 오랫동안 알고 사랑해온 사람이 곁에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조금씩조금씩 ‘사라져간다’는 사실에 있다. 그 슬픔은 망각의 강을 건너는 자가 아니라 이편 기슭에 남는 사람의 몫이다. <아이리스>가 아이리스 머독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존의 내면이다. 서툴고 수줍은 청년 존이 아이리스의 키스에 “고마워요”라고 답할 때, 정신을 잃고 가출했다가 나타난 아이리스 앞에서 존이 다친 동물의 신음 같은 괴성을 지를 때, “예전에는 당신과 둘이 있는 게 겁났는데 이제는 당신없이 못 살겠어”라며 울 때, 우리는 같이 울고 만다. 감독은 평생 누적된 존의 질투와 분노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절망한 존은 한밤중에 깨어나 의식없이 잠든 아내를 때리며 울먹인다. “이 나쁜 년! 지금은 또 누구랑 같이 있는 거야!”
<아이리스>는 치매에 걸린 작가의 이야기지만, 엄밀히 말해 예술가의 전기영화도 병리현상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이를테면 <아이리스>는 아이리스의 문학세계에 대해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남는 것은 사랑에 대한 질문이다. 처음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한 본질을 잃은 사람을 우리는 줄곧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른바 ‘영혼’은 한 인간의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아이리스>는 ‘위대한 연애’의 처음과 끝만 보여주고 존과 아이리스가 통과해온 40년을 생략한다. 그것은 맑은 물방울이 땅에 떨어져 더럽혀지고 강과 바다를 지나 다시 하늘로 올라가 맑은 빗방울로 내리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아이리스>는 그런 식으로, 사랑은 오래 지속된다고 말한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아이리스 머독(1919∼99)의 실제 삶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
1919년에 태어난 더블린 사람 아이리스 머독은 영국 최고의 지성인이자 동세대의 아이콘으로 통한 철학자 겸 소설가다. 옥스퍼드대학 서머빌 칼리지에서 수학하고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2차대전 중에는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1949년 이후에는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1954년 35살 때 <그물 아래서>(Under the Net)로 등단해서 1996년 마지막 작품 <잭슨의 딜레마>를 출간하기까지 머독이 남긴 26편의 소설은 철학과 윤리에 관한 엄격한 통찰, 오페라적인 플롯과 복잡다단한 성적관계의 묘사, 하이코미디로 특징지울 수 있다. 그중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재해석한 1978년작 <바다여, 바다여>(The Sea, The Sea)는 부커상을 수상했고 <잘려진 머리>(Severed Head)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선악과 자유, 사랑과 섹슈얼리티가 그녀의 영구한 테마였으며, 철학적으로는 프로이트와 사르트르, 문학적으로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권에 있었다. 그러나 머독은 저서뿐 아니라 삶의 방식을 통해 적잖은 문화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기도 했다. ‘세상과 거리낌없이 양성애적 사랑을 주고받는 보헤미안’으로 불렸던 그녀는 가까운 친구들과 애인을 교환했고 명망 높은 문학평론가인 남편 존 베일리와의 결혼도 개방적인 원칙으로 영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자녀를 갖지 않은 채 서로를 ‘아기’처럼 대하며 지냈다. 머독을 만난 이들은 그녀를 가리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여자’라고 묘사했고,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이 아이리스에게 매우 특별한 친구라고 믿었다. 아이리스 머독은 1997년 발병한 알츠하이머병이 악화돼 요양소로 옮긴 지 3주 만인 1999년 2월8일 79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