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호르몬 이상으로 온몸이 털투성이가 된 라일라(패트리샤 아퀘트)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아를 되찾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짝을 찾기 위해 문명사회로 돌아온 라일라 앞에 문명 신봉자인 과학자 나단(팀 로빈스)이 나타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우연히 숲 속에서 유인원 인간 퍼프(리스 이판)를 만난 나단은 퍼프를 ‘인간으로’ 길들이는 실험에 착수한다. 라일라는 자신의 실체를 알고 떠난 나단의 맘을 돌리기 위해 실험을 돕지만, 문명인으로 길들여지는 퍼프에게 연민을 느낀다.■ Review 세상 어딘가 다른 사람의 의식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고 할 때, 존 말코비치가 아니라, 이 사람, 찰리 카우프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할 이들이 더 많았을 거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시나리오를 썼던 찰리 카우프만의 차기작에 기대가 실리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인 스파이크 존즈가 프로듀서로서 든든한 ‘보증인’ 자리에 서고, 그와는 비욕의 뮤직비디오 ‘동문’인 미셸 곤드리가 메가폰을 잡았다고 하니, 그 기대가 다소 과열된 것이 사실.
<휴먼 네이쳐> 역시 착상은 기발하다. 자연 속에서 살아온 야생 인간이 문명을 만났을 때, 그리고 문명 속에서 살아온 인간이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두 가지 체험이 기이하게 엇갈리고 다시 만나는 이 이야기는 <타잔>의 플롯을 여러 번 비틀어놓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범상치 않다. 라일라의 입을 빌려 “피와 살의 감옥”에 갇힌 관객을 향해 “Fuck humanity!”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듯하다가, 중반 이후 돌연 안면을 바꾼다. 인간과 동물, 이성과 본능, 야만과 문명, 진심과 위선, 길들이는 것과 길들여지는 것. 과연 무엇이 우위이고, 진정한 가치인지에 대한 답은, 없다. 어느 쪽이든 ‘게임의 법칙’을 깨달은 자만이 이겨 살아남는다는 결론뿐.
감독 자신이 “슬픈 코미디”라고 소개한 이 영화는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과 재기로 차고 넘쳐 모자람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이 오히려 지루해지고, 연속 교차하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감정선을 흐트리는 것이 아쉬움. 캐스트는 화려하다. 팀 로빈스가 크기 콤플렉스에 매너 강박증까지 걸린 문명 예찬론자로, 패트리샤 아퀘트가 털로 덮인 자신의 몸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연 회귀주의자로,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의 괴짜 룸메이트를 연기했던 리스 이판이 유인원 인간 퍼프로 열연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청 상영됐던 작품.
박은영 cine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