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잔 다라(수위니트 판자마와트)는 아버지 쿤 룽의 미움을 받으며 자란다. 그가 기댈 사람은 어머니 대신 그를 돌보기 위해 온 와드(비파치 차로엥푸라) 이모뿐. 아내를 잃고 관직도 그만둔 채 성적 욕망에만 탐닉하던 쿤 룽은 와드를 후처로 삼고, 옛 연인 분렁(종려시)을 불러들인다. 아버지의 방종한 욕망이 지배하는 집안에서 일찍 성에 눈뜬 잔은, 동급생에게 첫사랑을 느낄 무렵 새엄마 분렁을 통해 성애의 쾌락에 빠져든다.■ Review 타이영화로는 <방콕 데인저러스>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소개되는 <잔다라>는, 1940년대 타이를 무대로 ‘남자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어머니의 숨을 거두며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저주받은’이란 뜻의 타이어 ‘잔라이’에서 이름을 얻은 아이 잔. 아내가 죽은 뒤 무절제한 쾌락의 규방으로 들어간 아버지 슬하에서, 그의 증오를 먹고 자란 아이의 성장사와 그에 겹쳐지는 성애의 견문록을 펼쳐 보인다.
머리 속에 각인된 최초의 이미지가 아버지의 정사장면이라는 내레이션이 암시하듯, <잔다라>는 성적 체험을 주축으로 성장의 시간을 좇는다.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어린 이복여동생에게조차 멸시당하는 잔의 유년은 잔인한 유린의 나날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집안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아버지를 보며 성장하는 잔에게, 섹스는 쾌락인 동시에 권위의 상징과도 같다. 장은 결국 아버지로부터 성적 우위와 권위를 모두 빼앗지만, 증오해 마지않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잔다라>는 적나라한 성애 묘사 때문에 판금됐던 1966년작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근친상간, 동성애 등 타이사회에서 금기시된 성적 표현을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은, 30여년 동안 재판되지 못했던 문제작이자 20세기 타이문학의 중대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감독들이 원작의 판권을 탐냈으나, 기회는 1999년 타이 최고 흥행작에 오른 <낭낙>의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에게 돌아갔다.
줄거리만 보면 화끈한 에로영화를 방불할 것 같지만, 화면은 뜻밖에 서정적이다. 카메라는 고풍스런 목조 가옥의 은밀한 구석구석을 훑다가, 이윽고 반라 여인에 다다라 부드러운 곡선을 탐스럽게 좇지만, 막상 정사에 돌입하면 딴청을 피운다. 1940년대 타이의 풍경과 공기를 담아낸 세트는 꽤 장관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굴곡도 적고 화면도 정적이어서 다소 심심한 느낌. 홍콩의 진가신 감독이 200만달러의 제작비 전액을 지원, 합작에 나섰으며, 홍콩 배우 종려시가 분렁으로 분해 성숙한 관능미를 보여줬다. 황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