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던 데이빗 에임즈(톰 크루즈)는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질투하던 줄리(카메론 디아즈)는 데이빗을 자신의 차에 태운 뒤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사고 뒤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데이빗은 심한 갈등에 빠지게 된다.■ Review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들이 한참 인기를 끌 무렵 공개되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는 그들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없을진 몰라도 제법 흥미진진한 영화였던 게 사실이다. 우리에겐 <제리 맥과이어>(1996)로 잘 알려져 있으며 로큰롤의 세계를 다룬 <올모스트 훼이모스>(2000)를 통해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는 감독 카메론 크로는 적어도 원작 <오픈 유어 아이즈>의 줄거리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의 이야기가 가공을 요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사뭇 존재론적인 사색을 담고 있던 원작과 달리, 제목마저 밋밋하게 바꿔놓은 <바닐라 스카이>에서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두 주연배우를 중심으로 한 구도 위에 배치시킨다.
영화 전반부는 온통 톰 크루즈의 섹시함과 페넬로페 크루즈- 그녀는 여기서 원작에서와 똑같은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 의 매력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데이빗과 소피아간의 구애장면은 어찌나 간지럽게 연출되었던지 지켜보고 있는 우리가 꼭 남들 데이트에 염치없이 끼여든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이건 <제리 맥과이어>에서의 톰 크루즈와 르네 젤위거간의 연애담을 바라보는 도중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저돌적인데다가 농도짙은 농담을 구사하기도 하는 카메론 디아즈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매우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배우들은 어떤 경우에는 적당히 심각한가 하면 때론 거의 장난삼아 즐기고 있는 듯한 불안정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의 성격은 조금씩 바뀌는데, 로맨틱코미디로 시작해서 멜로드라마로 방향전환했다가 스릴러를 거쳐 SF로 끝나게 된다.
제법 볼 만한 장면들- 가령 가면을 뒤통수쪽으로 돌려쓰고는 미친 듯이 행동하는 데이빗의 모습 같은 것- 은 다 원래의 이야기에 있던 것들이고 나름대로 변형을 꾀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별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으니, 사정이 이렇고 보면 왜 리메이크를 시도했는지가 도대체 오리무중이다. 혹 새로운 커플 탄생을 유도하기 위한 멍석깔기였던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픈 유어 아이즈>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굳이 이 영화로 복습하려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즐길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다. 물론 그건 스타 파워와 원작의 힘 덕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