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파리의 풍차 카페에서 일하는 아멜리에 풀랭(오드리 토투)은 어딘지 남다른 아가씨.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와 신경과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심장이 약하다는 오해를 받아 집에서만 자란 그녀는 고립된 성장기를 보냈다. 학교도, 친구도 없이 자신만의 상상 속에 은신해온 그녀의 일상은, 스물넷의 여름 뜻밖의 사건으로 출렁인다. 욕실 벽에서 40년 묵은 보물상자를 발견한 아멜리에는 남몰래 주인에게 상자를 전하고, 그의 반응에 보람을 느껴 선행을 계속하기로 맘먹는다. 어머니가 죽은 뒤 더욱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헤어진 사랑에 집착하는 카페 손님 조셉과 잔병치레에 시달리는 동료 조제트 등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일을.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즉석사진 부스에 버려진 사진들을 수집하는 니노(마티외 카소비츠)와 마주친 순간, 낯선 두근거림이 다가온다.
■ Review
뜻밖에도, 장 피에르 주네의 이상한 나라에서 날아온 또 하나의 초대장 <아멜리에>는 화사한 동화다. 갓 구워낸 크로아상처럼 바스락거리는 상상력이 피워내는 웃음과 말랑말랑한 로맨스의 속살을 품은. 자신 안의 세계에 유폐된 채 성장한 몽마르트르의 아가씨 아멜리에가 새롭게 눈뜬 소명은 사람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것. 일상의 남루한 바닥에서 행복이라는 보물을 캐내기 위해 ‘돈키호테’처럼 나선 아멜리에의 종종걸음, 원제를 빌리자면 ‘아멜리에 풀랭의 환상적인 생애’를 따라잡는 여정은 한결 밝은 색채로 물들어 있다.
따라서 아무렇지 않게 인육을 먹는 사람들의 악몽 같은 기괴함도, 조로한 과학자가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음울한 판타지도,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는 미래 묵시록의 어두움도, <아멜리에>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 살육이 난무하는 <에이리언4>를 찍고 돌아온 주네는 “싸움이 없는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니까. 그래서 접촉을 싫어하는 의사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할 때나 내미는 손길에 너무 가슴 두근거린 나머지 심장병으로 오인돼 과잉보호를 받고, 어머니가 투신자살하는 관광객에게 깔려 죽는 아멜리에의 유년은 불우한데도, 기발한 상황묘사로 웃음을 불러 온다. 길었다면 우울했을지 모를 외로운 성장기는 숨가쁜 내레이션과 함께 지나가고, 우연히 소명을 발견한 성인 아멜리에가 눈빛을 반짝이며 행복 찾기에 나선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곡물 자루에 손을 집어넣는 감촉을, 마르땅 운하에서 물수제비뜨기를 즐기는 이 엉뚱한 아가씨가 이웃들의 행복을 가꿔내는 힘은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판타지다. 스스로를 위한 여행 한번 못 떠나본 아버지를 자극하고자 그가 아끼는 정원의 난쟁이 인형을 세계일주시키고, 늘상 주인에게 멸시당하는 선량한 야채가게 점원을 대신해 주인의 아파트에 깜찍한 복수극을 장치하며, 수십년 전 자신을 떠나서 죽은 남편을 그리는 관리인 아줌마를 위해 연애편지를 조작하는 아멜리에의 기행은 끊임없이 웃음의 파문을 일으킨다. 숨바꼭질처럼 되풀이되는 니노와의 만남도 <아멜리에>를 더욱 낭만적인 동화로 다져가는 요소. 정작 자신의 행복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아멜리에의 망설임과 사랑에 대한 수줍은 기대, 그 사랑에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니노의 걸음이 교차될 때마다 화사한 로맨틱코미디의 색채가 짙어진다.
이처럼 <아멜리에>의 행복 지수가 높아진 것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까지의 음울하고 어두운 상상력을 주도했던 동반자 마르크 카로와 헤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행복’은 카로가 좋아하지 않는 재료였다니 말이다. 어딘가 부족하고, 소외된 기묘한 인물들은 카로와의 콤비 시절부터 이어져온 관심사지만, <아멜리에>에서 이들의 행복을 찾아가는 주네의 시선은 한층 따뜻하다. 광각렌즈로 기괴하게 왜곡된 이미지가 많았던 전작에 비해, 빠르고 느린 저속촬영과 고속촬영으로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간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다. 촬영은 <에이리언4>까지 심도있는 카메라로 어두운 판타지를 담아내던 다리우스 콘쥐 대신, 단편 시절의 동료인 브루노 델보넬이 맡았다.
“가장 사적인 공간과 기억으로 돌아갔다”는 주네의 말대로, <아멜리에>는 그의 가장 사적인 몽상을 풀어낸 영화일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인 파리로 돌아가되, 골목골목의 포스터와 차량을 일일이 바꾸고 디지털 효과를 덧입히며 가상공간처럼 꾸며낸 이미지의 세공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지만. 하긴, 주네에게 일상과 판타지가 그리 동떨어진 것일까.
일상에 숨은 행복의 판타지를 실현해내는 아멜리에처럼, 현실 속에 잠재된 마술 같은 상상력과 이미지를 길어올리는 게 그의 몫이니 말이다. <옵저버>의 한 평자는 “얼마쯤 지나면 순간적인 리얼리티라도 그리워진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이 2시간 동안의 동화는 프랑스에서 8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최근 영국에서 외화 개봉작 중 최고인 <와호장룡>에 육박하는 흥행성적을 거두며 행복하게 관객과 만났다.황혜림 blauex@hani.co.kr▶ <개봉작> 아멜리에
▶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