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심판>은 법정극이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 4만8천쪽에 이르는 실제 법정 기록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증언과 방청석의 분노를 담아내며, 황고둔 사건, 9·18 만주사변, 난징대학살 등 실제 법정에 오른 사건들을 차례차례 짚어간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 등의 기록필름이 수시로 인서트되고, 메이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재판의 주요 국면을 해설하는 장면들은 TV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감독은 법정이란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참극의 실상과 전범 단죄의 당위성을 뚝심있게 풀어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균형을 잃고 이글거리는 분노의 격문으로 화한다. 법정의 심문장면은 절묘한 논박의 쾌감보다 시원하게 쏟아붓는 카타르시스에 치중하고, 역사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파국도 과도한 정념 속에 투박하게 처리된다.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호소하는 감독의 진정성은 전해지지만, 다큐멘터리 필름에 비장한 효과음을 덧칠하는 순간부터 <동경심판>은 중국인을 위한 격정의 애국가에 머물러버린다.
중국인을 위한 격정의 애국가 <동경심판>
글
김민경
2007-02-28
일본을 향한 준엄한 경고를 담은 법정 실화 리포트.
1946년 9월29일, 도쿄에선 패전국 일본의 전범 처리를 위한 극동국제군사법정이 열렸다.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호주, 인도 등 11개국의 판사가 맡은 이 특별재판은 2년6개월, 818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400여명의 증인과 4천여개의 증거를 동원해 동아시아를 짓밟은 일제의 잔학상을 증명했다. 도조 히데키, 도이하라 겐지, 이카가키 세이시로 등 28인의 A급 전범의 화려한 망언의 기록을 함께 남긴 유명한 전범 재판의 실화가, 중국 TV에서 <정복> 등의 인기 범죄드라마를 연출해온 고군서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동경심판>은 중국 대표인 메이루아오 판사(류송인)와 젊은 중국인 기자 샤오난(주효천)의 눈에 비친 법정과 도쿄 거리의 풍경을 그린다. 서구 열강에서 온 다른 판사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메이는 일제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분투한다. 도쿄 유학생 출신인 샤오난은 오랜만에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패전의 상처로 망가져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자국의 만행을 알지 못한 이들은 증오의 화살을 샤오난에게 돌리고, 법정에 선 전쟁 지도자들은 일본의 학살이 “아시아라는 가정에서 형 일본이 말 안 듣는 동생 중국을 따끔하게 타이른 것뿐”이라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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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하자 당국은 한강을 통제하고 괴물과 접촉한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사건의 국면은 괴물이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괴바이러스에 집중한다. 당국은 한강변 주변을 방역한다. 괴물 사건이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국면으로 고정되는 것은 미국(미군)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괴물퇴치를 명분으로 에이전트 옐로우를 살포할 것을 결정하고 시민단체는 이에 반발하여 시위를 벌인다. 대한민국 정부가 괴물문제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멘트는 없다.
이 영화를 만든 당년 38세의 봉준호 감독은 이십년 전이던 고3 때 우연히 잠실대교의 교각을 기어오르던 괴생물체를 목격하고, 장차 영화감독이 된다면 반드시 이것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맥팔렌드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이야말로 자신이 고교시절부터 꿈꿔온 괴물영화를 만들 절묘한 소재라고 판단하고 사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한강의 괴물’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괴물의 태생이나 한강의 폭, 깊이, 은신처 같은 요소들을 고려한다면 한강의 괴물은 고질라나 킹콩 같은 크기일 수는 없다. 그래서 괴물은 도롱뇽 같은 양서류로 설정하고 괴물의 행각은 한강과 한강변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고 나서 명색이 괴물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대한의 크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괴물은 어떤 조건과 원인에 의한 돌연변이 생명체이지 에이리언 같이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우주생명체는 아니다. 괴물의 태생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고질라」나 「엘리게이더」와 비슷하지 「아웃 브레이크」나 「에이리언」과는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괴물적인 요소로서는 크게 어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니면 감독 자신이 괴물을 내세우고 있지만 애초에 괴물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여 괴물은 실제보다는 은유와 상징으로 더 기능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괴물이 차지하는 부분을 드러내더라도 충분히 영화로서 가능하다고 했던 한 출연배우의 발언은 아주 의미심장한 언급이다.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박강두(박희봉) 가족에게 괴물이란 그들의 삶을 압박해 들어오는 사회현실이다. 감독은 괴물이란 상징을 통해 사회나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황량한 벌판에 외따로 서서 삶이란 버거운 현실과 맞서고 있는 한 가족의 사투를 보여 준다. 가족의 막내인 현서가 처한 현실은 지극히 운명적이고, 괴물의 출현에 있어 대한민국이란 국가권력은 한 걸음 물러나 있고 그 자리는 미국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마치 한강의 관할권이 미국에 있는 듯하다.
공원으로 복원하기 전의 여의도광장을 생각해 보자.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 한 남자가 자동차를 몰고 광장을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했었다. 그걸 기억하면서 한 상황을 상정해보자.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어떤 사람이 군용 장갑차를 몰고 여의도 광장에 나타났다. 주변 기물들을 마구 부수고 차량들과 충돌하고 사람들은 바퀴에 깔린다. 사람들은 장갑차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오로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뿐이다. 괴물이 한강 둔치에 출현한 사건은 이와 같다.
이것은 오로지 물리적인 사태이지 생화학적인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접한 당국은 엉뚱하게도 괴생물체가 지닌 바이러스에 집중한다. 죽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어떤 감염의 징조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영화의 진행이 이렇게 엇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영화가 지닌 상징이며 권력에 대한 냉소의 자세인지는 모른다. 하여튼 영화는 이 부분에서 심하게 굴절되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종종 바다에서 고래가 어선의 그물에 걸려 죽는다. 당국이 괴물을 막거나 잡을 생각이었다면 한강에 그물을 치거나 거대한 그물을 장착한 헬리콥터 편대를 띄웠어야 한다. TV에선 최일구 앵커가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당국과 미국은 괴물을 잡을 생각이 없다. 한강변은 세상과 격리되어 있다.
당국은 방역차를 동원했다. 방역차에서 내뿜는 하얀 연기는 절대로 감염원인 바이러스를 죽이지 못한다. 연기의 실체는 살충제를 머금은 경유방울이다. 이 경유방울은 모기나 파리조차도 죽이지 못한다고 류시원이 MC 보던 호기심천국에서 이미 증명한 바 있다. 밤섬을 배경으로 몇 대의 보트에서 방역연기를 내뿜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이 장면이「친구」에 대한 오마주 혹은 냉소가 아니라면 바이러스가 한강을 넘어 사회의 곳곳으로 안개처럼 퍼진다는 상징인지도 모른다.
당국과 미국은 새로운 방역체계를 시험할 궁리만 한다. 괴물은 그럴싸한 구실이고 좋은 명분이 된다. 하지만 바이러스도 없는데 미국은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할 작업을 왜 하려는 것일까? 미국은 괴물의 출현이 자신들의 탓이며 이에 개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작정한 것인가? 그렇다면 괴물이란 미국의 또 다른 상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