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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노벰버
2001-09-25

시사실/스위트 노벰버

■ Story

야심 넘치고 또한 능력도 있는 광고회사의 간부인 넬슨(키아누 리브스)은 어느날 그만 직장도 잃고 애인도 잃는 신세가 되고 만다. 허탈한 그는 얼마 전 운전면허 갱신 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새러(샤를리즈 테론)가 자기한테 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새러의 제안은 자기랑 한달만 같이 살아보자는 것. 그러면 넬슨이 앓고 있는 ‘병’이 치유되리라는 것.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가고 사랑이 싹튼다.

■ Review

“한달이면 뭔가 의미를 가질 만큼은 길고 곤란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짧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매달 딱 그 한달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독특한 교제를 해온 새러는 11월을 함께할 남자로 넬슨을 점찍는다. 그리고는 성취욕에 불타는 이 지독한 워커홀릭에게 새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쾌활하고 자유로운 보헤미안적인 기질을 나눠주려고 한다. 서로 이질적이기만 한 둘 사이에 마찰이 없을 리가 만무하다. 섹스를 하면서 거듭 ‘천천히’를 주문하는 새러에게 넬슨은 화부터 내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혹시라도 규모가 커져버릴까봐 조바심을 치는 새러의 태도를 넬슨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넬슨도 새러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면서 바뀌어간다. 자만심 강하고 이기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라곤 보이지 않던 이 ‘미스터 11월’은 사랑의 힘에 감화를 받아 상냥하고 친절한(sweet) 남자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스위트 노벰버>는 기본적으로는 러브 스토리이지만 또한 어떤 면에서 보자면 악덕에 물들어 있던 한 남자의 속죄, 혹은 치유를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런 유의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 겪는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터치일 것이다.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거나 혹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될 때, 그런 변화에 증거가 될 수 있는 디테일들이 치밀하고 풍부해야 우리는 영화에 제대로 설득당하게 된다. 그런데 <스위트 노벰버>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영 솜씨가 서툴다고 할 만한 영화다. 정묘한 디테일들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은 탓에, 예컨대 넬슨이 갑자기 새러를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는 스토리 전개에 무언가 공백이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키아누 리브스의 뻣뻣한 연기는 무딘 영화 만들기에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팻 오코너라는 감독은 빼어난 정치 스릴러 <>(CAL, 1984)처럼 비평적으로 주목받은 작품들과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는 범작들을 왔다갔다한 사람인데, 이번 경우엔 굳이 판정을 내리자면, 후자의 범주에 드는 영화를 내놓은 듯싶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비평적 반응도 대개가 거의 신경질적으로 좋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한 어떤 리뷰의 제목에는 “엄청나게 어리석은”(Monumentally Silly)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하다. <스위트 노벰버>는 지난해 혹평을 받은 <뉴욕의 가을>과 함께 가을을 담은 실패한 로맨스 영화로 한데 묶일 수 있을 듯한데, 이렇게 말하면 어느 쪽이 더 기분 나빠할까?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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