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에 작성된 문서로 갈등의 축을 만드는 영화 <한반도>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전작 <실미도>에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급습 장면과 강인찬(설경구)의 결혼식 습격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줬던 강우석 감독은 <한반도>에서도 고종황제(김상중)의 독살 장면과 남쪽 대통령이 쓰러지는 장면을 교차로 잡아낸다.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영화의 메인카피처럼, 해방이 된 지금도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셈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영화는 대한제국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오늘날의 현실 정치를 너무나도 단순하게 연결시킨다. 국새만 찾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문제도 모두 해결된다는 식이다. 드라마의 허술함도 보인다. 일제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등장한 것 같은 애국지사 민재는 “민비를 이미연”이라고 답하는 주부들을 상대로 핏대를 세우고, 민재를 한심한 민족주의자라고 칭했던 상현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민재의 손을 들어준다. 캐릭터들의 내적인 감정 변화는 쏙 빠져 있다.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시작했지만, 끝내 국가주의를 긍정하며 끝났던 <실미도>처럼, 강우석 감독은 다시 역사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길을 잃는다. 땅 주인 노릇 좀 해보자던 애국심은 어느새 국수주의로 빠져들고, 극일(克日)이라는 주장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손을 잡는다. 의욕만 앞서 드라마적 재미는 물론 자신의 주장마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경우다. 강우석 감독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너무 우습게 알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무심함이 아니라 강우석 감독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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