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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런
2001-09-04

■ Story

냉전시대 소비에트 스파이를 색출하는 일을 했던 배너(아만드 아산테). 암살자 칼로프에게 아내를 살해당한 과거를 간직한 채 냉전종식의 현재를 살아가던 그에게 전 KGB 대장으로 엄청난 국가기밀을 간직한 부카린(유르겐 프로크노프)을 망명시키는 작전을 수행하라는 제의가 들어온다. 칼로프가 부카린을 노린다는 이유만으로 제의를 받아들이는 배너.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을 오가는 부카린 수송작전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 Review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2년. 미국과 소련을 둘러싼 첩보 얘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철의 장막’을 사건의 시발점이자 주인공의 과거가 묻힌 곳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전직 소비에트 스파이 소탕 요원이었던 배너가 (역시나) 전직 KGB 대장 부카린의 망명 완수 임무를 맡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미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혹은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돼가고 있는) 불안정한 현재를 대변한다.

영화 속에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중심축의 뻔한 대결구도는 찾아볼 수 없다. 과거의 양극이었던 이 두 국가는 대신 매우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계속해서 나오는 ‘이념이고 뭐고 돈이 최고다’라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는 자본주의를 묘하게 빗대고 있으며, 불안한 소련의 현 정치체제 아래 옛소련의 정치비리에 대한 기밀을 갖고 있는 전직 KGB 요원이 소련 밖으로 망명한다는 것은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로 미처 흡수되지 못한 채 정치적 난항을 겪고 있는 동구를 그린다. 돈에 대한 어설픈 집착을 보이다가 각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요원들,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는 임무 역시 이데올로기의 증발 뒤에 남은 불안한 현재를 비꼬려는 장치다.

냉전종식 이후 양극의 모습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틀은 ‘첩보물’이라는 거친 도식에 당연히 따라붙는 ‘액션’에 가려 아주 섬세하게 보여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할리우드의 ‘냉전종식 그 이후’를 다룬 액션영화들과 비교해볼 때 의중을 어느 정도 내비치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25살의 청년이었을 영국의 앤서니 히콕스 감독은 유럽의 감수성을 영화 안에 도입하고자 했다. ‘액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그의 섬세함이 내비치는 곳은 바로 영화 안에서 계속되는 국가 이동 화면들. 임무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인물들을 따라 화면은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빈을 비롯하여 헝가리의 공산당 석상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비춘다. 별다른 비중을 갖지 않는 칼로프의 정체에 실망하게 되더라도 여타 액션영화에선 보기 힘든 서정적인 배경들이 이 영화가 적어도 할리우드의 주류로 편입하기 위한 졸속작품은 아님을 보여준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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