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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 탈출
2001-07-31

■ STORY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서기 2029년. 미 공군 대위 레오 데이비슨(마크 월버그)은 침팬지에게 소형우주선 조종법을 가르치고 있다. 미지의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우선 침팬지를 보내서 안전을 확인한 뒤 인간이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위한 훈련이다. 자기 폭풍이 닥쳐오자 사령관은 침팬지를 내보낼 것을 명령한다. 항로를 이탈하고 교신이 끊겨버린 침팬지를 찾기 위하여 레오는 직접 소형우주선을 몰고 나간다. 레오 역시 자기 폭풍에 휘말리고, 낯선 행성에 떨어진다. 정글을 헤매던 레오는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철창 안에 가두는 것들은 바로 원숭이, 고릴라다. 이 행성의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인 것이다. 원숭이들의 도시로 끌려간 레오는 인간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테드 장군(팀 로스), 원숭이와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고 믿는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 등 다양한 성향을 가진 원숭이들을 만난다. 구조대와 만날 방법을 찾는 레오는 함께 붙잡힌 인간들과 도시를 탈출한다.

■ Review

1968년에 만들어진 찰턴 헤스턴 주연 <혹성탈출>의 리메이크작 연출을 팀 버튼이 수락한 이유는,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겠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혹성 탈출>은 실망스럽다. 다른 감독이라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신천지를 보여주던 팀 버튼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졸작이다. <혹성 탈출>의 주어는 원숭이가 아니라 팀 버튼이다. 낡은 소재를 재생시켜, <배트맨>이라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팀 버튼의 신작이라면, 누구나 기대를 걸게 마련이다. 그러나 <혹성 탈출>은 68년에서 현재로 시간이동을 해온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첨단패션으로 장식한 어색한 느낌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원숭이, 시간여행, 잃어버린 고향 등 기본적인 주제는 과거와 다름이 없다. 인종차별, 아니 종의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원숭이도 나오지만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자각일 뿐이다. 그 정도의 ‘인식’은 68년작에도 있었다. 인간은 원숭이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을 지배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용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어떨까. 원숭이가 인간을 애완동물로 키우고, 마차를 끌게 하고, 문지기로 쓴다면? 그걸 본 인간은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을까? 레오는 크게 반성하지 않는다. ‘미 공군’의 자의식이 확고한 레오는 자신의 부하인 침팬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진 인간이다. 동시에 지구의 원숭이는 모두 동물원에 있다는 말을 태연하게 다른 원숭이들에게 내뱉는 인간이다. 애당초 팀 버튼은 어떤 전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뒤집어 놓고. 조롱하고, 씹어대는 일이다. 레오나 아리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게 <혹성 탈출>의 몇 안 되는 매력 중 하나다.

이번 <혹성 탈출>의 무대는 지구가 아니다. 지구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행성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이 밝혀진다. <백 투 더 퓨처2>에서 보이듯이, 역사를 만든 것은 바로 주인공이었다. 그의 실수 혹은 행동 하나가 모든 것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공학을 이용하여 원숭이의 지능을 높였고, 마침내 그들에게 배신(?)당했다. 그 반역의 역사는 오로지 원숭이의 시조와 그의 일족에게만 전해져 왔다. 테드의 아버지는 과거의 인간이 만들었던 총을 보여주면서 경고한다. ‘반드시 그 인간을 없애라! 인간은 가장 잔인하고 교활한 종족이다.’ 좋은 말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혹성 탈출>은 계속 그런 톤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농담을 구태의연하게 늘어놓는다.

68년작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혹성탈출>의 절정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원숭이에게서 도망을 치고 피안을 찾던 찰턴 헤스톤은 갑자기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오열을 한다. 해안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것은 바로 자유의 여신상.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미래의 지구였고, 그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왔건만 오디세이의 유일한 목적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팀 버튼의 <혹성 탈출>에는 절정이 없다. 원숭이들의 역사가 시작된 칼리마에 도착한 레오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지만, 단지 사람들의 믿음을 배반할 수 없어 원숭이들과 일전을 준비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진짜 구세주가 등장하고, 테드가 몰락하는 등 격변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혹성 탈출>의 클라이맥스는 너무 약소하다. 그 정도의 답이라면 <혹성 탈출>이 시작하자마자 누구나 맞힐 수 있는 정도다. 레오는 승리할 것이고, 인간과 원숭이는 화해할 것이다.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니고, 아주 우스운 것들에서 세계와 인생의 통찰을 끌어내던 팀 버튼은 <혹성 탈출>에서 뻔한 주제만을 보여준다. 우주의 섭리는 잔인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도 일종의 농담으로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그건 68년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다며 절대로 밝히지 말라는 마지막 시퀀스의 비밀도 막상 보고 나면 허전하다. 팀 버튼의 그 정도 농담은 이미 <화성 침공>에서 1시간 반 내내 보았던 것이고, 샘 레이미가 만든 <이블 데드3>의 엔딩에도 못 미치는 정도다. 오히려 <혹성 탈출>의 정점은 언젠가 돌아온다던 원숭이들의 구세주가, 정말로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

▶ 혹성탈출

▶ <혹성탈출> 출연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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