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곧 재개발될 낡은 아파트에 한 청년이 도착한다. 미금아파트 504호에 새로 이사온 그의 이름은 용현(김명민). 택시운전을 하느라 밤에 출근하는 그는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510호의 여인 선영(장진영)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도박에 눈먼 남편에게 매맞고 사는 그녀는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날 밤 용현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난다. 사고사인지 계획된 살인인지 알 수 없지만 용현은 선영을 도와 죽은 남편을 야산에 묻는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둘은 가까워지지만 불길한 징조도 하나둘 나타난다. 505호에 사는 이 작가(기주봉)는 504호에 얽힌 사건들을 용현에게 알려준다. 용현이 이사오기 전에 살던 광태라는 젊은 작가 지망생이 불타 죽은 일, 30년 전 바람난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도망친 뒤 갓난아기 혼자 아파트에 남아 며칠 동안 울고 있었던 일 등 504호에는 이상한 기운이 서려 있다는 얘기. 이 작가는 이런 사건들이 30년 전 억울하게 죽은 여인의 원혼에서 비롯됐다며 소설을 쓴다. 고아인 용현은 30년 전 504호 살인사건의 생존자인 갓난아기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냥 굶어죽어도 몰랐을 일인데 불이 나는 바람에 발견됐다는 그 아이처럼 용현의 몸에는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이 남긴 화상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 Review
“누군가 있어. 뭔가 말하는 것 같아.” 미금아파트 504호에 살던 젊은 작가 지망생은 귀신의 소리를 듣는다. 이곳에서 30년 전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애가 돌아온다”는 원혼의 음성에 남자는 겁에 질린다. 그는 떠나려했지만 의문의 화재로 죽는다. 정녕 한맺힌 귀신이 있는 것일까? <소름>은 대답하지 않는다. 귀신이 있든 없든 <소름>에서 진짜 두려운 건 따로 있다. 504호에 얽힌 비밀이 하나둘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사라지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퍼즐 같은 이야기 조각들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되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등장인물들처럼 관객 역시 무방비 상태로 기습당한다. 사소한 소음과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가 단속적으로 이어지던 <소름>은 이즈음에서 저주받은 운명들이 고통스럽게 내뿜는 지옥의 레퀴엠을 들려준다. 그것은 장중한 것이어서 <소름>의 감독 윤종찬을 ‘올해의 신인’으로 손꼽게 한다.
굳이 장르구분을 하자면 공포영화에 속하겠지만 <소름>은 공포물의 문법에 종속된 영화가 아니다. 귀신에 관한 증언과 귀신이 부르는 듯한 자장가 소리가 있지만 귀신이 포착된 장면이나 격렬한 흥분을 일으키는 사운드는 없다. 난도질, 변형된 신체, 피와 내장, 괴물이나 악령 같은 눈에 보이는 공포효과를 쓰지 않는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 공간과 소리 사이에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두려움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초반에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용현이 취객을 태우고 운전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 오토바이를 탄 야식배달부가 택시를 지체시킨다. “밟아버려. 내가 책임질게. 저런 놈은 뒈져버려야돼.”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용현과 취객은 정말 사고가 나서 죽어버린 야식배달부를 목격하게 된다. 한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던 둘이 웃기 시작한다. 그 악마 같은 웃음이 그들만의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는 그런 광기와 순박함이 한낱 종이 한장 차이라는 걸 드러낸다. 마냥 착하고 어리숙하게 생긴 용현을 극단적인 상태로 몰고가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어리석음이다. “너, 나 사랑하니?”와 “너, 날 이용한 거지?”라는 두 질문에 선영은 당황한다. 그녀의 진심이 어디에 있건 중요치않다. 용현은 자신의 판단기준대로 행동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한순간 미쳐버린다. 용현의 살의는 야식배달부를 치어죽이고 싶었던 취객의 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국을 불러오는 데는 사소한 탐욕도 작용한다. 504호에 얽힌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한몫 잡겠다고 생각한 505호 이 작가는 용현이 이사오기 전 작가 지망생이 불타죽은 현장에서 노트 한권을 빼돌렸다. 죽은 작가 지망생의 애인이 “어쩌면 이 작가가 불을 지른 것인지 모른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미금아파트 사람들은 무엇이 그들을 좀먹고 망가뜨리는지 모른 채 살고 있다.
<소름>은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 구조가 드러나는 후반부에서 <소름>의 등장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드러난다. 30년 전 살인사건, 작가 지망생의 죽음, 이 작가의 소설, 이발소에 걸린 사진 속 인물, 용현이 선영에게 이끌린 이유, 선영 아버지의 광기, 용현의 살의 등이 하나의 실타래에 엮인다. 그것은 악업이 대를 이은 운명이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빠져나오려 발버둥칠수록 나락으로 이끌리는 물귀신같은 악연이 마침내 형체를 드러낸다. <소름>의 주무대인 미금아파트가 괴물처럼 보이는 것도 이순간이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흉한 몰골을 드러낸 이곳은 끔찍한 사건이 잇따른 장소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은 희생양이 되고 사건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이 작가가 쓴 소설은 출판사에서 퇴짜맞는다. 겉보기에 아무런 정치적 맥락도 없어보이는 <소름>이 서늘퍼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대목도 이런 지점이다. 재개발 직전의 미금아파트를 한국사회로 본다면 누구도 용현의 광기나 선영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소름>은 윤종찬 감독이 미국 유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 <메멘토>에서 시작된 영화다. <메멘토> 역시 한 젊은이가 낯선 아파트에 도착해서 30년 전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자신의 관계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모티브나 이야기의 뼈대는 같지만 <소름>은 <메멘토>와 같은 만큼 굉장히 다른 영화다. 그것은 금방 무너질 듯 잔뜩 일그러진 한국사회에 대한 윤종찬 감독의 근심과 두려움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장르의 관성이나 시스템의 요구에 타협하지 않는, 촘촘한 내러티브와 두터운 캐릭터로 승부수를 던지는 미학적 야심의 결과다. 만약 <소름>이 무서운 영화이기보다 슬픈 영화로 기억된다면 그건 감독의 진심이 전달된 까닭이다. 아파트 복도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 귀기울여본 적 있는가? 혼자 남은 아이가 굶어죽어도 세상은 평안히 돌아간다. 죽은 어머니가 부르는 자장가 소리만 처연히 메아리친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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