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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게임을 통해 본 북한, <어떤 나라>
문석 2005-08-23

<어떤 나라>의 명목상 관심은 북한의 매스게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의 매스게임은 과도한 정치성만 제거한다면, 체조와 음악 등이 고도의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이라 할 만하다. 물론 여기서 정치성을 떼어내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매스게임은 ‘전체를 위한 하나’라는 전체주의의 이상이 가장 잘 녹아든 집체예술이며,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가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게 북한 지도자들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두 소녀, 열세살 현순이와 열한살 송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니얼 고든 감독은 이들이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어가나에 관심을 두는 건 아니다. <어떤 나라>는 매스게임을 소재로 내세우지만, 관심만큼은 북한사회의 일상에 꽂혀 있다. 2003년 2월부터 9월까지 고든의 카메라는 노동자 아버지를 둔 현순이네와 교수 아버지를 둔 송연이네 집안 구석구석을 훑으며 밥숟가락은 몇개인지, 도시락 메뉴는 뭔지, 공휴일에는 뭘 하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생활의 잔때를 긁어모았다.

고든 감독이 이처럼 서방인으로서는 불가능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물론 전작 <천리마 축구단>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어떤 나라>가 북한 당국의 입장에 서서 체제를 홍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촬영 도중 갑작스레 정전이 되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하거나 김일성 주석 사망 뒤 ‘고난의 시기’를 겪었음을 시인한다. 딸의 생일날 다른 가족들은 강냉이죽 반 그릇씩 먹고, 딸에게만 한 그릇을 먹였다는 송연이 엄마의 고백은 북한사회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이 영화는 북한 중산층들의 ‘풀어헤친’ 일상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대신, 그들의 사고방식 그 자체를 드러낸다. “위대하신 장군님께서…”라는 상투적인 말조차 그들의 사고와 논리 속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행위라고 이해하게 하며, 현순이와 송연이가 매스게임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려 애쓰고, 이 공연을 ‘장군님’이 봐주길 희망하는 것 또한 ‘위대한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보다는 소녀다운 꿈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한다. <어떤 나라>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공존의 첫걸음’이라는 요즘 세상의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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