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나의 마을>은 정말 상투적인 표현을 빌자면 한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와 동심을 받쳐주는 신비로운 현상들이 어우러져 1940년대 말 일본 시골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물론 이 시대는 동아시아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힘겹게 살던 시기였다. 영화 초반부는 짐마 할아버지가 ‘맥아더 장군’을 원망하는 대사나 쌍둥이의 급우인 하쯔미의 가난한 삶을 통해 그러한 역사의 단편을 들춰내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아이들의 삶이다. 영화 속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짐마 할아버지의 죽음,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로 대변되는 가족의 삶, 쌍둥이가 겪어야 했던 질병과 온갖 말썽들 그리고 성에 대한 호기심까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길게 찍기의 미학을 통해 찬찬히 그리고 과장되지 않게 동심의 세계를 전해준다. 그 위에 덧붙여지는 것은 일본 특유의 설정들이다. 바람을 일으키는 신령 같은 세 할머니의 등장이나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좀 황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철저하게 자연과 아이들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은 한번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은 일부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90년대 일본영화의 경향을 정리한 <카이에 뒤 시네마> 일본판에서는 이 작품을 가리켜 다분히 유희적이고 일본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조용한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이러한 진단은 90년대 일본영화의 지형도에서 타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감독인 히가시 요이치를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비록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이 다분히 탐미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 작가로 출발한 그의 관심은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 극영화로 돌아선 뒤 만든 <써드>는 고교생 매춘을 소재로 한 목적없는 청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유머가 넘치는 수작이었다. 또한 80년대에는 로망포르노인 <러브레터>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분 출품작인 <나의 아저씨>도 십대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영화인데, 그만큼 히가시 감독의 폭과 스타일은 다양하다. 이번 개봉작은 그의 다양한 세계 중 일부를 보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