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발만 떼도 하늘이 뱅뱅 도는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엄마(고두심)는 수십년째 해남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막내딸(채정안)의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엄마의 한숨은 깊어간다. 목포 시내에서 열릴 결혼식에 무슨 수로 참석한단 말인가. 젊어서 사별한 남편은 아내의 꿈길에 찾아와 능청맞게 등을 긁어달라 하고는, 걸어서라도 막내 결혼식에 꼭 가라는 당부를 전한다. “밥 있제? 밥 좀 도라.” 잠에서 깬 엄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며칠은 족히 걸릴 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몇해 전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엄마>는 ‘엄마가 가는 길’이 주인공인 영화다. 치명적인 어지럼증을 극복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딸의 결혼식장에 당도할 것이다. 설령 그 길이 악명 높은 월출산 구름다리로 이어져 출렁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쳐 시야가 막히고 걸음을 내딛기 힘들어도, 걱정된답시고 따라나선 자식들이 저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꼴을 보는 일이 있어도, 엄마는 갈 길을 갈 것이다. 장르적 성격이 강했고 비극적 운명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간 가족 이야기 <가족>이나 <우리형>과 달리 <엄마>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길 위의 드라마다.
<엄마>는 여정 굽이굽이에 코미디와 판타지의 요소를 심어두었다. 먼저 떠나간 남편을 회상하면서 엄마는 (우는 게 아니라) 자꾸 웃는다. 만취한 채로 개천에서 일을 보다가 빠져죽은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허망하기도 하지만 정말 우스워서다. 판타지적 요소도 적지 않아서, 막내의 결혼식에 어떻게 엄마를 모실까, 하는 자식들의 아이디어는 육해공으로 엉뚱하게 뻗어나가고, 길가의 허수아비는 엄마의 여정을 지켜주는 응원군이자 도인 같은 품새로 영화의 내레이터 같은 역할을 한다.
경쾌한 리듬으로 흘러가던 <엄마>는 불교에 귀의한 딸이 합류하는 막바지에 이르러 눈물과 회한을 쏟아낸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 구절을 인용한 딸의 참회, 자신의 여정에 어머니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엄마의 눈물은, 그래서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앞뒤의 리듬과 톤이 상반되는 이 영화는 조금 더 간결했거나, 조금 더 풍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세상에는 꼭 제 딸로 태어나기를”이라는 카피에서부터 전해지는 짠한 울림, 촌스럽지만 투박한 진심이 담긴 이런 영화에 좀더 많은 관객이 반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