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1914년 워싱턴 D.C. 지도제작자이자 언어학자인 마일로 싸치(마이클 J. 폭스)는 전설의 제국 아틀란티스 탐험을 꿈꾸는 청년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그는 탐험가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틀란티스를 찾아나서고자 하지만, 박물관 간부들에게 지원은커녕 비웃음만 살 뿐이다. 낙담한 그에게 할아버지의 옛 친구라는 괴짜 억만장자 휘트모어(존 마호니)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아틀란티스행 길잡이가 될 고서를 건네며, 탐험을 후원하겠다는 것이다. 마일로는 루크 사령관(제임스 가너), 폭파전문가 비니(돈 노벨로)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꾸려진 탐험대와 함께 심해의 아틀란티스로 향한다. 거대한 철갑괴물의 습격에 잠수함을 잃고, 반딧불 떼의 화공에 쫓기는 험난한 여정 끝에 아틀란티스에 다다른 마일로 일행. 키다 공주(크리 서머)를 비롯한 생존자들이 쇠락한 문명을 이어가고 있는 그곳에는 예기치 못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 Review
“단 하루의 비극으로 아틀란티스 제국은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기원전 360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에서 언급된 이래 아틀란티스는 수많은 이야기꾼들과 탐험가들에게 꿈의 영토였다. 수천여년 전 풍부한 천연자원과 무역업으로 번성해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지진과 홍수로 하루 만에 심해로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땅. 가설이긴 하지만 ‘잃어버렸음’이 ‘발견’됨으로써 상상력의 바다 위로 또렷이 드러난 이 미지의 대륙은 모험의 닻을 내리기에 안성마춤이다. 쥘 베른의 원작소설은 물론 수차례 영화화를 거치며 널리 알려진 <해저 2만리>를 비롯해 각종 가설과 상상이 뿌리내린 아틀란티스는, 올 여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귀착지이기도 하다.디즈니의 여름 신작 <아틀란티스:잃어버린 제국>은 아틀란티스를 찾아나선 마일로 일행의 탐험기를 담은 액션어드벤처. 태산같은 해일이 도시와 사람을 집어삼키고, 이상한 광채에 쌓인 채 바다로 가라앉는 아틀란티스의 멸망으로 시작되는 모험담의 안내자는 어리숙한 청년 마일로다. 마일로는 매사에 어설퍼보이지만, 아틀란티스에 대한 지식이나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 아틀란티스의 언어로 쓰인 고서를 해독해가며 마일로가 이끄는 여정은, 흡사 테마파크의 다양한 어드벤처관을 연상시킨다. 기계 디자인이 정교한 잠수함에 탑승하고, 심해에서 철제갑각류 리바이어던과 전투를 벌이고, 좁고 긴 파이프관같은 통로와 화산 분화구를 거쳐 아틀란티스의 입구에 안착하기까지 몇 가지 난관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 것은 용암에 둘러싸인 고산지대, 분수처럼 사방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아틀란티스의 장관에 이른 뒤다. 물 위에 세워진 듯한 거대한 건물과 조각들, 한때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으나 쇠락한 제국의 유산답게 장대하면서도 폐허 같은 아틀란티스의 풍경은 제작진의 야심작.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로 살려내기 위해 동남아시아와 열대의 낙원, 고대 서양문명의 분위기를 뒤섞어 국적과 시대불명의 신비로운 공간으로 창조해냈다. <아틀란티스…>가 상상한 아틀란티스는 해저에 유폐된 채 시들어가는 낙원이다. 문명의 단절로 글을 읽지 못하는 아틀란티스의 후손들에게 그들의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이 수정임을 가르쳐주는 것도, 그들과 함께 수정을 노리는 루크 일당에 맞서 아틀란티스를 지키는 것도 결국 이방인인 마일로 일행의 몫이다.
<아틀란티스…>가 선사하는 이미지는 수려하지만, 사실 낯선 세계에서 활약하는 영웅적인 이방인의 모험담은 하나 특별할 게 없다. 액션어드벤처 장르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했다는 제작자 돈 한의 말대로, <아틀란티스…>는 <해저 2만리>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들의 애니메이션 버전에 가까우니까. 잠수함과 물거품, 수정의 광채, 석재 비행기 공중전과 용암의 분출까지 실사로 보여주기 힘든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 위해 쓰인 시각효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전통적인 2D애니메이션에 3D의 입체감과 역동성을 가미한 스펙터클로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화면을 채우고, 남은 빈틈은 유난히 많은 등장인물들의 수다로 채워넣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전작 <쿠스코? 쿠스코!>가 그랬듯 <아틀란티스…>도 어딘가 낯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란 점이다. 우선 캐릭터들의 각진 생김새가 색다르고, 자막이 올라갈 때 흐르는 엔딩곡을 제외하면 노래는커녕 춤도 한번 안 나온다. 재잘거리는 동물 조연도 없으며, 아틀란티스의 디자인이나 공중전 등에서는 그동안 좀체 볼 수 없던 SF 스타일을 차용했다. 아틀란티스란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극중 탐험처럼, <아틀란티스…>는 소재와 스타일의 다양화를 위해 미지의 영역 탐사에 나선 디즈니의 두 번째 시도다. 일단 동화와 뮤지컬이라는 전형성을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쿠스코? 쿠스코!>와 <아틀란티스…>의 전략만으로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영광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듯. <쿠스코?쿠스코!>나 자국 내 극장 흥행수익이 제작비 9천만달러의 절반을 밑도는 <아틀란티스…>의 부진은, 디즈니가 다음 행보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놓았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 사라진 파라다이스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나오는 전설상의 대륙.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는 섬으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는 지브롤터해협 서쪽의 아틀란티스해(지중해) 가운데에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풍부한 산물과 주변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는 전리품, 무역 등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갑작스런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하루 사이에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아틀란티스가 어디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설이 분분하다. 한때 에게해 남부의 화산섬 테라 부근 바닷속에서 고대의 성곽이 발견돼 아틀란티스로 유력시됐으나, 증거가 불충분했다. 그뒤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카이스는 버뮤다 삼각지가 아틀란티스였다고 주장했고, 남극대륙이나 사하라사막을 내세우는 이들도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가설만 있을 뿐이다.
소설과 영화 등 허구 속에서 아틀란티스는 ‘잃어버린 세계’의 상징으로 쓰이곤 했다. 잘 알려진 작품은 역시 해저에서 아틀란티스의 유산을 찾아내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그만큼은 아니지만, 여왕이 지배하는 사하라사막의 왕국을 내세운 피에르 베누아의 <아틀란티스>도 인기를 누리며 수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국내에 출간된 제인 게스켈의 <아틀란티스의 여왕>도 아틀란티스를 소재로 한 소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가이낙스에서 제작한 TV시리즈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도 아틀란티스 모험극이다. 비밀스런 소녀 나디아와 쟝이란 소년, 그들이 노틸러스호에 타고 아틀란티스로 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나디아>는 일본과 국내는 물론 아니메를 즐겨보는 미국 10대들 틈에서도 꽤 인기를 누린 작품. 신비한 소녀와 아틀란티스, 수정의 힘 등 <…아틀란티스>가 공개됐을 때, 인터넷에서 표절 논란이 일 정도였다. <해저 2만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작품은 전체적으로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특히 캐릭터의 경우 마일로는 물론 탐험대의 구성과 생김새, 직업까지 <…나디아>와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나디아>의 팬페이지에는, 두 작품의 비슷한 캐릭터와 장면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비교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