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1930년대 캐나다의 숲에서 전통 인디언으로 살면서 여행 가이드도 하고 잡지에 투고도 하는 아치 그레이 올(피어스 브로스넌)은 젊고 현대적인 인디언 여성 포니(애니 칼리포우)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레이 올을 비버 사냥꾼에서 환경 보호론자로 바뀌게 하고 그는 강연과 책 출판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큰 강연이 있던 날 한 신문기자가 그를 찾아와 그의 출신성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 Review

피어스 브로스넌이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인디언 복장을 입고 있다고 해서 <늑대와 춤을>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케빈 코스트너나 피어스 브로스넌 둘 다 극중 출신성분은 백인이지만 전자가 인디언문화에 동화되어가는 백인을 그렸다면 후자는 거꾸로 백인에게 악수를 청하는 인디언의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시대적 상황과 로맨스가 결부된 장편 대서사시 같은 뉘앙스도 흐르지 않는다. 시대적 상황이 극의 주제 자체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으며, 전반적으로 흘러나오는 사랑이야기도 결코 극적이지 않고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언급될 뿐이다.

그렇게 된 큰 이유는 이 영화가 실제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엮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그러나 <간디>나 <채플린>에 비해 그레이 올이라는 인물이 확실히 부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레이 올은 1930년대 유명한 환경보호 운동가였(다고 하)지만 영화는 주로 그의 개인적인 삶, 특히 포니와의 사랑과 교감, 그 사랑 속에서 변화해가는 그레이 올 자신에 주목한다.

환경 운동가로서의 그레이 올이나 나중에 밝혀지는 출신성분에 관한 이야기에 극의 초점이 맞춰졌었다면 포니의 역할과 비중은 많이 축소됐겠지만, 감독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영화의 주제는 그레이 올과 포니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빠르지 않은 템포로 찬찬히 흘러간다. 그러나 여기에서 <엘비라 마디간> 같은 투명한 서정성을 기대하는 것도 상당한 무리수가 있고, 환경 운동가로서의 그레이 올의 모습도 약하게 비춰지기 때문에 자칫 영화를 보면서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튀는 것은 전혀 인디언 같지 않은 피어스 브로스넌의 얼굴이다. 그의 과거에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은 잠시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지만 그러한 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제 그레이 올의 사진은 보지 않는 편이 좋을 듯싶다. 손원평/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