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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과 속(俗)의 대결, <달마야, 서울가자>
박은영 2004-07-06

달마가 크리스마스 무렵 서울에 가서 로또를 샀다. 빚더미에 앉은 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속세를 겪고 알아야 하는 스님들의 딜레마!

<달마야, 서울가자>는 <달마야 놀자>의 속편이면서도 아주 다른 영화다. 사실 ‘조폭의 산사 습격 사건’은 그 설정만으로도 임팩트가 있었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조폭들의 버티기와 스님들의 밀어내기 구도가 웃음을 자아냈던 것이다. 코미디의 속편이 대개 그렇듯, 이 경우도 장소를 바꾸고 인물을 불렸다. 공격(스님파)과 수비(조폭파)의 역할이 전편과 바뀌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 그러나 무엇보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그리고 정서의 차이다. 전편의 캐릭터와 설정을 이어받아 다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흩어진 염주알을 손 안 대고 주워담으라’는 새로운 화두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였을 것이다.

스님들, 서울에 가다. “울어도 서서 울라고 서울”이라는 그 야박한 속세에, 자연과 불심에만 묻혀 살았던 현각(정진영)과 무진(이원종)과 대봉(이문식)이 간다. 큰스님의 유품을 전해주러 가는 길,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 즈음 출가한 그들의 눈에 서울은 외계 도시다. 그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목적지인 무심사를 찾아내는데, 놀랍게도 그곳 불상 이마에 차압 딱지가 붙어 있다. 빚을 진 사찰은 건설회사에 넘어가, 조만간 불도저에 밀려 나갈 위기다. 세 스님은 절을 살려보기 위해 ‘흥행’을 의식한 법회를 열지만, 번번이 조폭들의 훼방을 받는다. 스님들의 “신성한 법회”와 조폭들의 “신성한 법률 행사”가 격돌하는 것이다. 성(聖)과 속(俗)의 대결은 대봉이 산 로또가 1등에 당첨되고, 그 영수증이 든 불전함이 사라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전으로 이어진다.

전편에 이어 ‘스님파’와 ‘조폭파’는 황당한 방법으로 우열을 가리려고 한다. 스님들에겐 불전함을 되찾아 절을 살리는 것이, 조폭들에겐 절터에 주상복합빌딩을 세우는 것이 절박한 꿈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가 안 되는 것이다. 배경이 서울인 만큼 그들은 369게임이나 잠수 대결이 아니라 노래와 폭탄주 대결을 시도한다. 스님파가 불리하다는 예상이 당연하겠지만, 승부욕에 불타는 스님들의 경우라면 좀 다르다. <반야심경>을 랩 버전으로 바꾸는 조폭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멋들어지게 랩을 소화하는가 하면, 해골바가지의 썩은 물도 달게 마셨다는 원효대사에 버금가는 내공(?)으로, 다양하게 제조한 폭탄주를 오렌지주스와 대추차, 열반주와 극락왕생주라 명명하며 잘도 들이켠다.

역할 이미지를 뒤집어보이는 건 ‘잘 놀고 잘 싸우는’ 스님들만이 아니다. 기존 조폭코미디에선 볼 수 없었던 어수룩한 조폭들이 여기 있다. 특히 리더인 범식(신현준)은 스스로 조폭인 것이 싫고 부끄러운 조폭이다. ‘대륙개발’의 명함에 집착하거나, ‘단순 무식’ 패션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이러니까 우리가 깍두기란 소리를 듣는 겁니다. 우리가 무슨 반찬입니까?” 그들이 몸담았던 조직에 버림받고 배신당하는 설정 또한 이들이 하루빨리 ‘손씻기’를 종용하는 장치다.

<달마야, 서울가자>는 이렇듯 ‘착한’ 영화다. 또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구하는 판타지다. 성과 속은 화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영화는 서둘러 ‘그렇다’고 답한다. 이는 로또 당첨금을 차지하겠다고 악다구니를 벌이던 스님파와 조폭파와 빚쟁이들의 소동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각의 돌출 행동(또는 어떤 깨달음), 이어지는 동자승의 기발한 제안 앞에 ‘모두가 하나되는’ 변화는 너무 급작스러워 보인다. 이 ‘매직 모멘트’의 ‘매직’이 관객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미빛 인생>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다 자작 시나리오 <아이언 팜>으로 데뷔한 육상효 감독은 <달마야, 서울가자>를 두 번째 연출작으로 골라 잡으며, ‘캐릭터코미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소신을 보였다. 그런데 <달마야, 서울가자>는 그의 말처럼 “볼 때 재밌고 돌아갈 때 불쾌하지 않은 코미디”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십수년 만에 서울에 올라와 ‘문화 충격’의 멀미를 느끼는 은하사 스님들처럼 멀리서 ‘타임 머신’을 타고 온 영화인 듯 느껴진다. 프랭크 카프라와 빌리 와일더 시절의 할리우드 클래식 코미디를 사랑하는 그는 수행자들이 등장하는 코미디 <소림축구>나 <시스터 액트> 스타일로 웃기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달마야, 서울가자>가 내세운 소신인 동시에 위험수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간구하는 진정성, 그 미덕에 눈을 맞출지, 다소 거칠고 어색해 보이는 올드 패션 코미디라는 결점에 눈을 맞출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들

영어 섞인 설법에 침묵 세리머니까지

스님파와 조폭파. 팀 대결이 ‘맨 투 맨’ 마크 형식이다 보니 개개인의 캐릭터가 도드라지고 또 대비된다.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등장하는 ‘터줏대감’들은 스님파의 청명, 현각, 대봉.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옹고집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청명을 연기한 정진영은 이번엔 ‘의외의’ 웃음을 선사한다. ‘재미난’ 법회를 열어보자는 후배들의 제안에 영어를 섞어 백팔번뇌를 설명하고,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를 성악가 톤으로 부르는가 하면, 폭탄주를 열반주입네 하면서 들이켜기도 한다. 현각과 대봉도 전편에 이은 좋은 콤비를 보여준다. 현각 역의 이원종은 스님파의 브레인이자 행동대장으로서 전편보다 많은 활약을 보인다. 대봉 역의 이문식은 ‘묵언수행’ 중인 수다쟁이 스님의 애타는 심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특히 로또에 당첨된 뒤에 발작에 다름 아닌 ‘침묵 세리머니’를 선보일 때, 묵언을 깬 뒤에 터져나오는 말을 제대로 조립하지 못해 주어와 술어가 도치된 괴이한 화법을 구사할 때, 그의 코믹 감각이 제대로 발휘된다. 신현준이 연기하는 조폭파의 리더 범식은 제대로 된 ‘직업인’이 되겠다는 계획 때문에 절터에 빌딩 세울 야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캐릭터. 도회적이고 스타일 좋은 신현준의 이미지를 반영, ‘조폭 패션’을 못 견디는 남다른 감각의 소유자이면서도, 선글라스를 쓰다가 눈을 찌르는 등 의외의 허술함이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전편과 달리 ‘로맨스’도 피어나는데, 무심사의 젊은 스님 무진과 대륙개발의 비서 미선이 그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양 ‘소속사’의 관계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불운한 남녀인데, 이들의 짧은 사랑은 영화 전체로 봤을 때 조금 튀는 것이 흠이다. 전편에서 은하사를 습격했던 제규파의 제규(박신양)도 깜짝 출연한다. 포장마차를 개업한 제규는 한때 앙숙이던 청명이 찾아오자 “멸치 빼고 다시마로만 끓인 국물”에 우동을 말아주는 배려를 하는 등의 섬세한 변화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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