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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동기가 불명확한 ‘도망자’ 게임, <헌티트>
심은하 2004-03-09

오스카 수상자 3인방, 윌리엄 프리드킨, 토미 리 존스, 베니치오 델 토로가 벌이는 밀리터리 ‘도망자’ 게임

<람보>와 <더 록>이 그러하듯이 <헌티드>도 후일담이다. 베트남전은 전쟁을 ‘극복된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회상하는 미국사회의 전쟁 로망을 일순간에 박살냈다. 이후 할리우드 전쟁영화는 전장을 벗어난 군인을 다루는 후일담에 집착한다. <헌티드>는 코소보의 전장에서 시작된다. 하늘에는 장마처럼 퍼붓는 나토의 공습, 지상에서는 알바니아인, 세르비아인이 얽힌 인종학살이 이루어지는 생지옥에 주인공 애런이 투입된다. 은성훈장을 가슴에 달고 미국으로 돌아온 애런(베니치오 델 토로)이 숲속에서 밀렵꾼들을 ‘환경보호’의 이름으로 난도질하는 대목까지의 전개는 <람보>의 반복학습이다.

LT(토미 리 존스)가 자신의 손으로 길러낸 살인병기 애런을 쫓기 위해 전원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역으로 복귀하면서 본격적인 추적극은 시작된다. LT는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에서 닥터 킴블을 쫓던 샘의 환생이다. <헌티드>의 격투장면은 대체로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총보다는 칼을 선호하거나 닌자를 연상시키는 애런의 움직임은 ‘낭인’이나 ‘무사’의 형상으로 환원되고, 애런과 LT의 지속적인 일대일 대결방식이나 군에서 맺어진 둘의 사제관계는 중국 무협물의 변용처럼 느껴진다. 특공무술의 연장선상인 맨손격투가 빈번하게 재현되는 시각적인 면도 그렇다. 일흔을 바라보는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 영화를 액션영화보다는 서부극이나 무협물에 가까운 정서로 구현한다. 후반부의 추격장면은 노회한 감독의 특기를 회상하도록 하고, LT가 살인기술의 시범을 선보이는 구분동작은 긴박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액션 연출로서 안이한 선택이라 할 만한 일대일 ‘맞장’ 모드를 시종일관 반복하는 내러티브는 구태의연하며 긴장감의 속도를 떨어뜨린다. 애런이 전쟁 뒤 민간인을 살해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가 LT를 왜 그리워하는지도 명확지 않다. 그로 인해 LT의 추격도 애런의 도주도 출구없는 골목에 막히게 된다. 긴장관계는 와해되고 의미없는 주검들만 남겨진다. 전쟁이 낳은 살인기계한테도 관객이 납득할 만한 살인동기라는 근거가 요구된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든’ 죽든 이유는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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