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의사는 닉(클라이브 오언)이고 큐레이터 유부녀는 조르단(안젤리나 졸리)이다. 조르단이 닉을 처음 본 건 런던의 한 자선단체 파티장이다. 에티오피아에서 구호활동을 하던 닉이 이 파티장에 나타난 건 구호기금을 줄이기로 한 자선단체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정의감 강하고 다혈질로 보이는 닉이, 턱시도 빼입고 폼만 잡는 신사들에게 일갈하며 파티장을 깽판놓는 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닉은 그 자리에 에티오피아의 깡마른 어린이 한명을 데리고 왔다. 기아에 허덕이는 그곳의 현실이 이렇다며 “이 아이를 봐라!”고 외친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의도했을 텐데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그 어린이는 부끄러움이 없을까. 이렇게 행동하는 구호활동가가 있을까.
파티장 한구석에 앉아 있는 조르단이 닉을 보며, 닉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것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끈 게 정작 무언지 모호한 채로 감동하며 시작할 수 있다. 기부금을 챙겨들고 에티오피아로 직접 찾아온, 하얀 옷의 천사 같은 조르단에게 닉이 마음이 끌리는 것도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영화다. 그 사랑을 치장해주기 위해 에티오피아, 타이, 체첸 난민들의 비참한 이미지, 그곳의 ‘폭도’들의 잔혹한 횡포를 쉴새없이 끼어넣는다. 급기야 자선기금이 끊긴 닉이, CIA와 손을 잡기까지 한다. CIA의 문건 같은 걸 ‘반군’한테 건네주고서 구호물자를 받는다. 그 구체적인 거래 내역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쯤 되면 닉이라는 인물이 제정신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영화는 의심하지 않는다. CIA의 공작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 시선이 깔려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할리우드영화에서 그런 게 한두편이겠냐마는, 이 영화에서 사랑의 질감은 캐릭터나 남녀 사이의 갈등없이 전적으로 구호활동의 숭고한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 그 이미지가 왜곡되는 마당에, 사랑엔들 남는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