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1980년의 어느 날, 수배 대학생 상호는 변두리 마을의 허름한 목조건물 2층에 세들어 살게 된다.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 1층 방엔 매혹적인 여인 희란(김지현)이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최철호)은 투박하고 가학적이며 여인은 정사 와중에도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희란의 몸에 넋이 나간 상호는 몰래 숨어들어 남편을 가장한 채 그녀를 범한다. 두 번째 정사에서 희란은 상호의 얼굴을 보지만 그를 받아들인다. 둘의 비밀정사가 잦아질수록, 전직 형사였고 콤플렉스 심한 남편의 눈길은 점점 차가워진다.
Review
썸머타임>은 욕심이 많은 영화다. ‘포르노그라피, 그 이상의 흥분’이란 카피에서 이 영화의 주된 목표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썸머타임>은 역사의 환부, 우울한 시대의 초상에까지 손을 뻗친다. 이 영화에서 육체의 향연을 벌이는 남녀는 모두 ‘80년 광주’로 집약되는 어두운 시대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선했으나 역사의 화염을 피하지 못해 더럽고 허술한 변두리 단칸방으로 추방당했다. 얇은 나무판자를 사이에 두고 아래층, 위층이 나뉘는 그 공간의 허술함이 구멍을 낳고, 그 구멍이 그들의 욕망의 비상구이자 비극의 씨앗이 된다.
한때 한국의 30대 남자들이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연예인 1위로 꼽혔던 룰라의 김지현은 그 구멍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나신을 드러낸다. 아니, 카메라는 그 구멍의 시점을 넘는 월권을 감행하며 갖가지 각도에서 많은 남성들에게 은밀한 관음의 대상이었을 한 여인의 속살 전부를 한곳만 빼고 비로소 전시한다. 물론 여성 관객을 위한 배려도 있다. 모드링크제 광고로 얼굴이 알려진 류수영은 소년처럼 희고 부드러운 몸매로 수시로 화면을 채운다. 물론 예정된 길을 따라 싱싱한 육체를 가진 두 남녀는 본능의 부름에 화답하며 남편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정사 퍼레이드를 펼친다.
스토리라인은 매끈해보이지만 <썸머타임>은 디테일의 조력이 부족한 편이다. 위기의 정사에 빠져드는 두 남녀의 감정선을 살리기에 대사는 너무 밋밋하고 복선도 충분치 않다. 착하고 예민한 미청년은 내면적 긴장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 준강간을 감행해버리고, 자신과 살을 맞댄 남자가 남편이 아님을 알아차린 여인이 그를 받아들이는 대목은 너무 갑작스러워 난데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고 노골적인 관음지상주의로 가지도 않는다. 80년대 에로영화들이 잘 쓰던 교활한 사운드 효과나 육체의 곡선을 교묘하게 훑는 카메라 기교는 자제되는 것이다. 시대의 폭력성도 외적 환경에 그칠 뿐 마음의 결에 이르거나 이야기 전개에 직접 참여하지 못해 소재 남용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김지현의 파격적 변신이라는 포인트만으로도 충분한 호기심을 집중시켜온 <썸머타임>은 결국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허문영 기자 moon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