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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
2001-05-15

<투발루>

■ STORY

낡을 대로 낡고 오는 사람이라곤 부랑자밖에 없는, 동전 대신 단추를 입장료로 받는 외딴 수영장. 안톤(드니 라방)은 아직도 수영장이 성황이라고

믿고 있는 눈먼 아버지에게 사람들의 소음이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주면서, 바깥 세상과 고립된 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소녀

에바(슐판 하마토바)가 선장인 아버지와 함께 수영장을 찾는다. 수영하는 에바의 나체에 매료되는 안톤. 이들이 사랑을 키워가는 사이, 수영장

건물을 철거하고 돈을 챙기려는 안톤의 형 그레고어(테렌스 질레스피)에 의해 에바의 아버지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죽은 아버지의 보물상자에서

‘투발루’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지도를 발견하는 에바. 에바는 그곳을 향한 항해를 준비하지만, 결정적인 부속품 ‘임페리얼’이 없어 배는 움직이지

못한다. 수영장의 모터에 들어 있는 ‘임페리얼'을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는 안톤과 에바. 수영장의 철거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안톤의 마음은 다급해져간다.

■ Review

꿈결 같은 호흡으로 사랑과 희망, 삶의 유머를 내뿜는 영화. 순도 높은 판타지영화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하여

자르브뤼켄영화제, 판타스포르투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영화제 인기작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이 호칭이나 감탄사 등 지극히

간단한 대사만 하는 이 영화는 마치 무성영화처럼, 혹은 어린아이의 의사소통방식처럼, 말을 아끼는 대신 풍부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관객을

동화의 품안으로 매끄럽게 끌어들인다. 그 달콤한 품안에서 관객은 뜻밖에 외로움과 절박함이 뒤섞인 깊은 여운까지 맛볼 수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현실 속엔 없을 것 같은 아득한 시공간. 실제로는 불가리아의 황량한 폐선장인 그곳을, 감독 파이트 헬머는 몇 가지

처리를 통해 상상의 공간으로 가꾸어냈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40년된 조명을 사용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뒤

채색을 함으로써 그것은 가능했다. <투발루>가 가지고 있는 색은 크게 다섯 가지다. 실내는 세피아톤, 야외는 푸른색, 수영장

모터실은 붉은색, 그레고어가 등장하는 곳은 녹색, 해피엔딩을 보여줄 땐 장밋빛. 시퀀스별로 각기 다른 모노톤을 띠는 <투발루>의

영상은 호감과 반감, 따뜻함과 차가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영화의 판타지를 강화한다.

투발루. 영화제목인 이 낯선 지명은 남태평양 피지 근처에 있는 작은 섬나라의 이름이다. 에바와 안톤이 끝내 모든 어려움을 겪어낸 뒤 바랜

지도 한장을 들고 찾아 떠나는 곳. 그곳은 감독 말대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 실현되는 장소”로, 일종의 유토피아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어떤 곳일까. 돈을 벌기 위해 수영장 건물을 부수려는 그레고어에 맞서 낡은 수영장 건물을 지키려는 안톤을 통해, 영화 <투발루>는

무엇인가를 파괴하며 문명을 건설하기보다는 초라해도 평화를 유지하며 정을 나누는 삶을 옹호하는 듯하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제작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크’라는 옛 조명기를 사용하고, 컴퓨터 없이 편집하고, 바다에 배가 떠다니는 꿈 장면을 색종이로 만든 배와 파도를 가지고

찍는 등 <투발루>는 가능한 한 구식으로 만들리라 작정한 듯 일일이 손맛을 담아 만든 영화다.

<루나 파파>에 출연하기도 했던 슐판 하마토바가 보여주는 에바의 복고적인 매력,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을 떠올리게 하는

드니 라방의 마임 같은 연기, 잔잔하면서도 힘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그 안에 담긴 진한 정서와 카프카적인 분위기. 어쩌면 <투발루>는

디지털 시대에 보기엔 너무 아날로그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초창기 영화에서나 맛볼 수 있을 듯한 영화라는 매체 고유의 멋을

지니고 있고 한편으로는 새롭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는 <투발루>는 매력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감독 파이트

헬머의 장편데뷔작. 작품에 대사가 적은 것은 12개국에 걸친 오디션에서 선발된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과 작업했기 때문이라고 감독은 ‘석명’하기도

했다.

최수임 기자

파이트 헬머 감독 "흑백영화의

그림자를 밟고"

1968년 독일 하노버 출생. 14살 때 처음 영화를 찍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감명받아

그 다음날 바로 누이를 배우로 써서 단편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3년 뒤 그는 단편 <피의 향연>으로 한 아마추어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게 되고, 이에 고무된 헬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영화사에서 조감독 등 다양한 영화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을 TV 방송사나 해외 영화배급사에 팔았다. 1992년, 헬머는 뮌헨영화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빔 벤더스에게 영화를 배운

그는 1995년에는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스클라도노프스키 형제들>을 빔 벤더스와 공동제작하기도 했다. <투발루>가

아날로그적인 옛 영화언어에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이듯, <스클라도노프스키 형제들> 역시 “영화의 발명을 기리는 의미에서 옛 장비들로

예전 영화언어를 그대로 옮기고자 시도한, 향수가 가득한 흑백영화”라고 헬머는 말한다. <깜짝쇼>(Surprise!)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단편. 아내가 자고 있는 침실에 각종 장치를 설치하여 아내가 일어나면 바로 아침이 차려지게 한다는 깜찍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폭소를

선사한 답으로 여러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다. 그밖에도 그는 <사랑의 여행>(1989), <도적들>(1990), <유리창

청소부>(1993) 등의 단편을 만들었고, 코카콜라 광고를 찍기도 했다. 첫 장편인 <투발루>는 원래 그가 18살 때 구상한

이야기였다. 12년이나 지나 30살에 그 아이디어는 영화로 완성되었고, 그는 지금 <집시의 시간>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시나리오를 썼던 고단 미힉이 각본을 쓴 두 번째 작품 <주인없는 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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