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선배와 사귀고 있는 신아(김서형)는 “평생 한 사람하고만 해야 한다면 좀 그렇잖아. 그런데 한번에 한명씩”이라면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자유연애주의자다. 병원에서 일하는 호스피스 동기(김성수)의 연애관은 뚜렷하지 않다. 그런 그들이 우연히 만나 첫날 격정적인 정사를 나눈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두 사람, 조심스런 재회가 이뤄지고 사랑을 고백하더니 동거를 시작한다.
■ Review섹스에 인격이 있을까? 몸을 재발견하려는 90년대 이후의 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고전 문구를 재해석하지 않더라도, 이제 몸 그 자체가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몸끼리 만나 몸의 주인이 어떤 영혼의 소유자인지 개의치 않고 곧바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면, 그 ‘대화’를 존중할 만한 인격의 만남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섹스는 비로소 독립된 인격체로 등장한다. 신아와 동기의 섹스에는 예술적 은유나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없다. 억압과 소외, 그리고 타락의 정치적 대체물로 처해지던 섹스의 운명이 온전한 하나의 주체로 탈바꿈했다. 신아와 동기라는 영혼의 주체가 대화를 나누는 건 입이 아니라 성기를 통해서다. 처음 보는 성기끼리 탐색전을 벌이고 나서야 입이 조심스레 말한다. “우리 한번 사귀어보지 않을래요?”
영혼의 정서적 교류? 그건 성기끼리 의기투합한 다음의 일이다.
섹스가 하나의 주체로서 발언하는 건 성기를 통해서다. 봉만대 감독은 ‘낯선 성기에게 말 걸기’, ‘니꺼 귀여워. 내꺼랑 사이좋게 지내서’, ‘성기로 사과하기. 사정으로 위로받기’ 등으로 장을 나눠 성기가 화자의 주체가 됐음을 (계몽적으로 느껴질 만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장애인이 아닌 한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소리가 없다면 그건 이상하다. 무언의 소통에서 시작해 소곤소곤 흥을 붙이더니 시끌벅적해지면서 포르티시모로 빨라진다. 성기끼리의 마찰음이 그토록 크게 극장 안에 울려퍼진 적이 있을까. 발가벗은 남녀의 몸이 정상위 혹은 후배위로 포개지는 따위의 익숙한 장면으로는 뇌파의 진폭에 별 영향을 못 받는 이들도, 귓속으로 파고드는 성기끼리의 대화에는 아찔할 것이다.
대화가 늘, 언제까지 평화롭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 대화가 고성이 오가는 싸움으로 발전하는 게 현실이다. 신아와 동기 역시 예외가 못 된다. 공교롭게도 성기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와 방식에 변주를 가하면서 갈등이 생겨난다. 초콜릿이라는 첨가물을 곁들여 성기를 “초코바”로 만들어 먹던 시기가 정점이었다. 그 이후 시작된 공용 화장실에서의 섹스, 시외버스 안에서의 섹스, 그리고 항문섹스는 위기를 부르고 고조시킨다. 새 대화법이 대화의 업그레이드용으로 기능하지 않은 건 어느 한쪽의 일방 통행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꺼림칙해하는 신아를 동기가 괜찮다며 다그쳐 공용 화장실에서 섹스를 벌였을 때, 처음으로 갈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들의 섹스를 누군가 엿본다는 걸 알아챈 신아가 후닥닥 뛰쳐나가고 동기가 영문도 모른 채 쫓아나간다.
“미안해, 미안하다구.” “뭐가 미안한데?” “너가 화를 내니깐….” “너는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니?”
20대 중반을 막 넘어선 이들은(물론 그게 나이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쌍방통행 길에 생겨난 장애물이 뭔지 명확히 인식하지도, 제거하지도 못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문제가 생겼음을 드러내는 것 역시 섹스를 통해서 보여준다.
신아와 동기의 섹스가 사랑을 지향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신아와 동기의 영혼이 사랑을 지향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마치 미리 결정된 숙명처럼 그들의 사랑은 고성이 오가는 싸움 이후 싸늘하게 식어간다. 성기끼리의 대화에 주목한 또 다른 영화 <베터 댄 섹스>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행복스런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베터 댄 섹스>는 사실적이지만 행복한 동화처럼 끝나서 심심했고,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진짜 현실을 단조롭게 직시해서 허전하다. 그렇다고 판타지가 개입되면 스타일만 망가질 뿐 구원투수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섹스와 사랑을 동전의 앞뒤 같은 동일체의 존재로 받아들였기에 신아와 동기의 관계에 비극이 닥쳤고, 영화의 색깔이 회색톤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화양연화>는 섹스를 무리하게 배제시켜놓고도 사랑이 어떤 것이라는 걸 놀랍게, 감동적으로 체험시켜줬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불완전 연소된 섹스의 운명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고 사랑에 ‘한눈’을 팔았다. 그래도 성기끼리의 대화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 제작 · 홍보 힘겨운 고행길맛있는 섹스에는 고통스런 대가가 따른다?
“섹스에도 햇볕정책이 필요하다”며 에로영화를 당당한 장르의 하나로 요구하는 봉만대 감독의 여정이 순탄할 리 없었다. 6㎜ 에로영화를 15편 만들고 16번째 작품으로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제작비 문제로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다음 카페에 개설된 영화의 닥터 X방, 닥터 Y방은 성에 대해 솔직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는 장이 됐으나 일부의 부정적 시선으로 폐지되는 운명을 겪었다. 제목에 ‘섹스’가 들어간다고, 선정적이라고 영상물등급위로부터 ‘유해광고선전물’로 판정받아 4종의 포스터가 반려됐고 지하철공사에선 시민의 항의를 이유로 포스터를 철거하기도 했다. 그래서 각종 홍보 이벤트를 펼칠 때 제목을 ‘맛있는 XY 그리고 사랑’ 혹은 ‘맛있는 色s 그리고 사랑’식으로 바꿔야 했다.
역으로 이색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제작사 기획시대는 몸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섹시한 초콜릿을 만들어 이색 캐릭터 상품으로 출시했고, “왜 배우들만 벗나, 나도 벗는다, 벗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며 봉만대 감독이 중요 부위만 잎사귀로 가린 알몸 팸플릿을 만들어 부산영화제의 Piff 광장에 대량 살포하기도 했다.
사실적인 섹스장면을 찍어내는 작업은 배우에게나 스탭에게나 커다란 고행길이었다. 봉만대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의 동선과 작은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지시하고 그대로 연기하도록 했다. 시범이 필요했고, 감독은 연출부 스탭을 상대역으로 삼았다. 감독의 상대가 된 스탭은 ‘섹스 마루타’로 불렸다. ‘열정적 굴러다님’이란 제목을 붙인 첫 섹스장면은 85㎜, 50㎜, 32㎜ 세개의 렌즈를 바꿔 끼워가며 90컷 넘게 촬영했다. 배우들은 탈진상태에 이를 지경이었고, 중요 부위를 교묘하게 가린 ‘공사’ 테이프가 뜯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배우 김서형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똑같은 섹스 동작을 동선 때문에 컷 분할한다고 여러 번 반복해야 했고, 똑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감독님에게 그냥 실제로 한번만 하면 안 되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반문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