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식민지 시대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은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한다”는 소련 당국의 의심 때문에 1937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단이주를 당한다.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와중에 살아남은 어린아이와 젊은이들이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당시의 삶을 증언한다. 소련연방의 일급 화가인 신순남도 그중 한명이다.
■ Review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조선족 화가 니콜라이 신(신순남)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 것은 1997년의 일이다. 전시회 소식과 함께 신문에 실린 한점의 작품이 젊은 다큐멘터리스트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무작정 화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고 도서관에 가서 러시아 한인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은다. 그러는 한편 “노인이 된 화가는 자신이 평생 그린 그림을 아무 생각도 없는 조국 땅에 모두 주고 갔는데, 이곳의 젊은이가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마침내 그는 카메라를 들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갈 수 있었고 3년 만에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을 완성한다.
영화는 두줄의 가로축과 세줄의 세로축으로 짜여 있다. 가로의 한축은 화가 신순남이고 다른 한축은 살아남은 한인 전체다. 이들의 증언은 제각각 하나의 개인사 혹은 가족사이지만, 여러 개의 목소리들이 합해지는 순간 이 다큐멘터리는 우즈베키스탄 한인공동체의 구전사(oral history)로 돌변한다.
<하늘색 고향>이 그리는 현재는, 신순남의 전시회를 매개로 해서 동시대의 한국까지 공간적으로 확대된다. 이같은 확대의 이유는 우즈베키스탄 한인들의 존재를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화가 신순남의 경우 자신이 겪은 일들을 세계사적 맥락에 놓고 해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적 능력 때문에 이 구전사에서 중심 뼈대를 이룬다. 반면 다른 등장 인물들은 손자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이 일상어를 통해 담담하게 회고한다. 그러나 이같은 자잘한 이야기들이 구전사의 피와 살을 이룬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든, 여기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민족과 국가 단위의 대충돌이 있었던 20세기 전반기의 동아시아에서 조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점 혈육들의 유랑기다. 음악으로 치자면 멜로디와 화성이 하나인 대합창, 그것도 죽은 이를 위한 위령 미사곡이다. 18만~20만명의 이주민을 위한 레퀴엠은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만큼이나 장중하다.
신순남은 우즈베키스탄 한인들의 역사를 재현한 장대한 연작 그림에 <레퀴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소련연방 전체에 걸쳐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이런 그림에 착수한 것은 소수 민족에 대해 어떤 비판적인 견해도 금지되었던 시절부터다. 신순남은 서른살 무렵부터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근 채 놀랄 만한 근면성을 가지고 그림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림들을 공개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를 끌어간 힘은 소명의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할머니가 치마끈에 묶어둔 마지막 패물인 은가락지를 풀어주셨던 덕분에 미술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신순남이 힘겨운 고학 생활을 하는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는 공동묘지 어딘가에 묻혔다는 사실 외에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한 여성이 마지막 힘을 다해 손자를 교육시켰고, 그 손자는 자신의 할머니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역사를 그림으로 증언한다. 그 그림들이 모국으로 전해져 전시회가 열리고, 다시 한 여성감독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알려준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다시 여성으로 이어지는 이 기적 같은 역사의 릴레이!
<하늘색 고향> 안에는 세줄의 시간축이 공존한다. 첫 번째 시간대는 1937년 당시다. 그 순간은 증언자들의 말과 일부 자료 사진을 통해 재구성된다.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한 여성이 마지막 힘을 다해 손자 신순남을 교육시켰고, 그는 자신의 할머니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역사를 그림으로 증언한다.
두 번째 시간대는 이주 이후 이 다큐멘터리가 착수되기까지의 60년에 걸친 세월이다. 그것은 흔적들, 매우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흔적들로 남아 있다. 죽음의 신이 펼친 망토자락을 간신히 벗어난 생존자들이 폐허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무엇보다도 카메라에 잡힌 그들의 몸 자체가 생생히 증언한다. 악몽과 눈물로 차근차근 절여져 이제는 건조하게 말라버린 듯한 기억, 열등한 언어로 간주된 조선말, 그나마 유려하지 못하고 토막난 언어도 또 다른 강력한 흔적들이다. 그림 안에 들어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로부터 현재의 화가의 얼굴로 이중인화한 장면은 이같은 맥락을 요약한다.
김소영 감독은 이 시간대를 낙관적인 발전론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주 당시에 한인들이 심었다는 그 나무를, 감독은 거칠지만 단단한 밑동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늘을 가득 덮을 듯 화사하게 펼쳐진 가지와 이파리들로 천천히 틸트업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사실 이 다큐멘터리 전체를 관통한다.
<하늘색 고향> 안에 있는 세 번째 시간대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 현재 순간이다. 이 부분은 신순남의 전시회를 매개로 해서 동시대의 한국까지 공간적으로 확대된다. 이같은 확대의 이유는 자명하다. 공식적인 역사 서술과 우리의 기억 속에서 모두 사라져버린 우즈베키스탄 한인들의 존재를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전쟁을 목전에 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류가 카메라를 발명한 이래 오래도록 천착해온 다큐멘터리의 존재 의의일 것이다.
영화가 완성된 이래로 다시 3년. <하늘색 고향>은 여러 국제영화제를 옮겨 다니며 명성과 상을 주워담은 끝에 드디어 개봉관을 만난다. 4일간의 단관 개봉이라는 조건이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그것도 변방으로 달려갔던 다큐멘터리다운 운명이다.김소희 cwgo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