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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심오함 없어도 부족합없이 즐겁다,<데어데블>

■ Story

매트 머독(벤 애플렉)은 12살 때 방사능 폐기물에 눈을 다쳐 실명한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청각, 촉각, 후각 등의 초인적인 능력. 머독은 레이더처럼 귀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권투선수인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머독은 복수를 다짐하며 정의를 위해 자신의 힘을 바치겠다고 결심한다. 성인이 된 머독은 낮에는 범죄 전문 변호사로, 밤에는 데어데블로 변신하여 악인을 처단한다. 데어데블은 연인인 일렉트라(제니퍼 가너)의 아버지가 암흑가의 보스 킹핀(마이클 클락 던컨)의 자객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나 일렉트라는 데어데블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해한다.

■ Review

데어데블은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다. 그의 능력부터가 그렇다. 시력을 잃은 대신 머독은 귀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데어데블은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날아오는 총알도 ‘귀로’ 본다. 하지만 데어데블이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빗방울이 일렉트라의 얼굴에 떨어지는 순간뿐이다. 엄청나게 발달한 청력은 또한 약점이기도 하다. 지하철의 굉음이나 교회의 종소리 등은 데어데블에게 위협적이다. 우리는 눈을 감고 잠이 들지만, 데어데블은 두꺼운 쇠로 만들어진 관처럼 생긴 상자에 물을 채우고서야 잠들 수 있다. 아침에 깨어난 머독은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하여 스테레오의 볼륨을 높인다. 그렇게 데어데블은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

미국 만화의 혁명가 프랭크 밀러가 쓴 80년대의 <데어데블>은 ‘극악한’ 정의의 수호신을 그려냈다. 데어데블은 맞서 싸우는 어떤 악당 못지않게 야비하고, 폭력적이다. 악당의 부인을 인질로 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맹세했듯이 데어데블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척결한다. 악마와 싸우는 동안 악마와 닮는 정도가 아니다. 데어데블의 복장은 악마의 그것이다. 붉은 가죽옷과 마스크의 상단에 달린 뿔 모양의 돌기. ‘데블’은 링 위에 선 아버지의 닉네임을 물려받은 것인 동시에 악과 싸우기 위하여 악의 수단을 선택하겠다는 결의다. 어린 시절부터 <데어데블>의 팬이었다는 마크 스티브 존슨 감독은 프랭크 밀러 풍의 데어데블을 그려내지만, 극단적이지는 않다. 블록버스터에 걸맞게 조금은 순화시켰다. 애초에는 <스폰>이나 <블레이드>처럼 중간 규모의 액션영화로 출발했지만 <스파이더 맨>의 엄청난 성공에 고무된 제작사는 블록버스터로 방향을 바꾸었다. 과격한 액션과 에로틱한 장면을 집어넣어 R등급을 받으려던 계획도 변경되어 PG-13으로 낮췄다. 데어데블의 악마적인 면모를 원하던 마니아들에게는 약간 아쉬운 변화다.

데어데블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킹핀과 불스아이가 등장하지만 중량감이 떨어진다. 어떤 무기든 백발백중인 불스아이의 테크닉은 놀랍지만, 그냥 하급 자객일 뿐이다.

다행히 영화 속의 데어데블은 여전히 고뇌하는 영웅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데어데블도 자신의 폭력이 단지 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데어데블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면서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낸다. 친구도 연인도 없이 악인들과 교감했던 팀 버튼의 <배트맨2>만큼 침울하지는 않다. 게다가 데어데블은 마침내 현실을 깨닫는다.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암담한 질문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조금 희망적으로 바뀌게 된다.

<데어데블>의 액션은 특이하다. 데어데블은 박쥐처럼 반사되는 음파로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낸다. 무술의 고수들이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마크 스티브 존슨은 데어데블이 귀로 ‘보는’ 모습을 첨단의 영상으로 재현한다. 무죄로 풀려난 강간범을 처단하기 위하여 술집에서 격투를 벌일 때, 술집 내의 모든 움직임은 음화를 보는 것처럼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날아오는 총알의 소리, 다가오는 땀내음을 통해 데어데블이 귀로 보는 것을 관객은 눈으로 볼 수 있다. 와이어를 이용하여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의 중간 정도 된다. 데어데블에게는 초인적인 균형감각이 있기 때문에, 배트맨보다는 우월한 조건으로 악당들과 싸울 수 있다.

영화 속의 데어데블은 여전히 고뇌하는 영웅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데어데블도 자신의 폭력이 단지 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데어데블>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영웅을 영웅답게 만드는 것은, 위대한 적수다. 데어데블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킹핀과 불스아이가 등장하지만 현저히 중량감이 떨어진다. 어떤 무기든 백발백중인 불스아이의 테크닉은 놀랍지만, 그냥 하급 자객일 뿐이다. 뉴욕을 장악하는 밤의 제왕 킹핀은 잔뜩 폼을 잡고 있지만 목소리말고는 봐줄 게 별로 없다. 영웅과 맞상대를 할 만한 카리스마가 없다. 그러면서도 속편을 위한 준비는 치밀하게 한다. 일렉트라, 킹핀, 불스아이 등 조연 일부를 살려두는 것은 그런 이유다. 원작만화처럼 대결을 벌이고 승부가 갈리긴 하지만, 완벽한 파멸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긴 그게 더 현실적이긴 하다. <데어데블>은 블록버스터로 커버린 몸집에 걸맞게, 적당한 수준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다. 그나마 데어데블의 인간적인 고뇌와 슈퍼히어로의 화려한 액션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래서 즐겁다. 뭔가 새로운 것도, 심오한 것도 없지만 슈퍼히어로의 휘황한 액션을 즐기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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