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윤락여성이 길에서 집단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나 경찰은 피해자의 직업적 특성을 들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동료 고은비(예지원)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후보로 출마한다. 여야후보들의 정치공작과 주위의 냉대로 고은비 자신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 갖가지 시련에 부딪히지만 결국 똘똘 뭉쳐 선거 유세에 나선다.
■ Review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윤락여성과 정치인이다. 영화는 초반부에 이 두 집단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하면서 유사성을 부각시킨다. 야당의 정치인이 여당의 사주를 받은 윤락여성과 정사를 하던 도중 복상사한다는 설정은 이같은 희화화의 극단적인 예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이 인간성 차이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윤락여성이 강간을 당한 일에 대해 경찰과 정치인 등의 공권력이 “창녀에게도 강간이라는 게 성립하느냐”는 태도로 일관한데 반해 윤락여성들은 헌신적인 동료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집단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으로 접어들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의 맞대결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영화 속 지역 구민 혹은 영화 밖 관객을 향해 정치인은 윤락여성만도 못하다고, 혹은 윤락여성의 도덕성은 기성 정치인을 제치고 국민의 대표자가 될 만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선악 이분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우리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단지 ‘언니들’과 함께 울고 웃기만 하면 된다.
영화가 취하는 이같은 입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울 만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극중 베드로 신부(남진)의 말대로 예수님조차 “죄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을 뿐더러 어떤 사람의 직업적 특성이 그 사람의 존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사회가 합의한 윤리성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고은비 후보와 그의 선거 캠프에서 주변의 어마어마한 편견과 멸시를 딛고 자신들의 존엄성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는 모습은 새삼 감동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 조문과 마주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총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은비 일행은 윤락여성인 자신들도 ‘국민’의 일부이며 국회의원의 권력 또한 자신들을 포함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각성에 이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윤락여성도 `권력`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 영화의 세부 사항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현실로부터 직접 인용되었거나 차용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 치치올리나는 말할 것도 없고, 윤락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라는 발단은 근년 들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미군문제에서 뇌관 일부를 제거한 이슈로 보인다. 또한 극중에 등장하는 여성 경찰서장(정경순)은 윤락가를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했던 김강자 서장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성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며, 마지막에 서장이 고은비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같은 발상은 약자의 편에 서서 활동해온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공개적으로 피력한 적이 없을 만큼 도전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시선은 자못 비판적이다. 백성기(이문식)라는 정치부 기자를 통해 386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진보세력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고 조롱할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를 총체적으로 불신하면서 성매매 여성, 가난한 계층, 장애인, 노인 등 소외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락녀를 가족으로 둔 부모가 “어쩌자고 텔레비전에까지 얼굴을 비추느냐. 창피해서 양잿물 먹고 칵 죽어야지 못 산다”며 울부짖는 모습은 이 영화의 코믹하고 과장된 전체 스타일에 균열을 낼 만큼 사실적이고 섬뜩하다.
좋은 감상문은 여기까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도 그 자체로 영화다움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정치의식과 영화적 세련미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다. 마치 윤리 교과서를 낭독하는 어린 학생 앞에서 망연자실한 어른처럼, 관객은 영화의 자의식 과잉과 치기를 속절없이 바라보게 된다. 룸살롱에서 폭탄주 마시면서 낄낄댐직한 농담을 코미디나 유머와 혼동하는 버릇은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자신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자 국민이라는 각성을 갖게 된 고은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도 윤락여성`이라고 강론하는 신부님으로부터 큰힘을 얻는다.
더욱이 이 영화의 정치 의식은 최근 대중적으로 형성된 비판의식의 수준과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거나 기껏해야 모사하는 수준에 그친다. 도덕적 중심이 윤락여성에게 있고 공권력은 도덕적인 패배자로 출발해서 시종일관 희화화를 면치 못하는 설정은 그저 앙증맞은 흑백 논리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술꾼들의 농담은 아무리 유치해도 웃기는 데가 있고, 편집이 제구실을 해준다. 무엇보다 윤락가와 정가를 대비시켜 가치와 상식의 전도를 일으키는 한국 대중영화의 거칠고 무모한 힘과 용기를 근본 원인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김소희 cwgo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