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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고증, 허술한 내러티브 <쇼쇼쇼>
문석 2003-02-26

■ Story

1977년 서울의 변두리에 사는 산해(유준상), 상철(이선균), 동룡(안재환)은 혈기는 넘치지만, 인생을 걸고 할 일은 찾지 못한 젊은이들. 우연히 동네 건달들과의 노름에서 이긴 이들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술집의 소유권을 얻지만, 장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탓에 고민만 한다. 동룡의 아이디어로 한국 최초의 칵테일 바를 만들기로 결심한 세 청춘은 술병 돌리기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고적대 리더 윤희(박선영)를 영입한다.

■ Review

소독차 꽁무니를 쫓는 아이들 뒤에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전략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쇼쇼쇼>는 <친구>에서 시작해 <해적, 디스코왕 되다> <클래식> 등으로 이어지는 복고풍 영화의 줄기를 잇고 있다. 다른 복고 소재 영화와 다른 구석이 있다면 당대의 분위기만을 자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꽤나 디테일하게 과거를 복원해냈다는 점. 촬영지인 춘천의 공간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미술 작업을 꼼꼼히 한 덕에 1977년이라는 시간은 생생하게 스크린 위로 살아난다. 이런 시각적 장치는 단지 향수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산해가 윤희를 처음 만나는 것은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기념’ 카퍼레이드 도중이고, 통행금지나 풍기문란 단속반에 쫓기며 둘의 사랑은 발전하며, 당시 인기 TV프로 <쇼쇼쇼> 출연은 이들의 간절한 목표가 된다.

고증은 치밀한 반면 내러티브는 허술한 편이다.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에게까지 초점을 맞추려다 보니 이야기의 호흡은 짧아지고 흐름은 툭툭 끊긴다. 안정적인 내러티브 대신 올망졸망한 에피소드만을 산발적으로 나열하면서 분위기는 산만해지고, 캐릭터들의 감정은 어디론가 증발한다. 후반부 윤희의 아버지가 “산해의 아버지가 빨갱이였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산해가 윤희 아버지 차 앞에 꿇어앉는 장면은 다소 뜬금없다. 톤이 서로 다른 연기자들의 부조화도 아쉬운 점. <쇼쇼쇼>의 가장 큰 약점은 너무 단순하고 평이한 갈등구조를 택했다는 것이다. 부잣집 여성을 사이에 둔 가난뱅이 젊은이와 완고한 아버지의 대립은 지나치게 정형화된 틀에 머물러 있다. 둘의 관계에서 상철보다 윤희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설정처럼 덜 ‘복고적’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쇼쇼쇼>는 흘러간 시대와 밑바닥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선명하게 묻어나는 영화다. 연기자들의 병 돌리기 실연장면보다 젊은이들의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에 방점을 찍었더라면, 더더욱 진심이 느껴졌겠지만. 문석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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