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지혜(손예진)는 다락을 정리하다가 엄마 주희(손예진)의 첫사랑이 담긴 일기장을 발견한다. 준하(조승우)가 써내려간 그 일기는 지혜에게 두 소년과 한 소녀가 겪었던 사랑과 작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준하는 여름방학 때 <소나기>처럼 짧은 만남을 가졌던 주희와 우연히 재회하지만, 주희가 친구 태수의 정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두 사람이 먼저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태수는 주희에게 마음을 주면서도 말없이 친구의 사랑을 돕기로 결심한다. 태수를 다리 삼아 위태롭게 사랑을 이어가던 준하와 주희는 편지 한통이 태수 부모에게 들통나면서 십대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을 맞게 된다. 낡은 일기장과 사진, 쪽지를 들추며 오래된 사랑에 젖어 있던 지혜. 부모들의 사랑 한편에선, 지혜와 그녀의 학교선배 상민(조인성)이 천천히, 쉽게 무너진 부모보다 씩씩하게,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 Review
엄마는 내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 스무살 무렵의 소녀라면, 그것도 세살 적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기억을 더럽힐 여유조차 없었던 아빠를 가진 소녀라면,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지혜는 한마디 변명도 듣지 않고 낯선 남자의 독백에 마음을 내맡기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가 “엄마가 꺼내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그 속에 엄마의 첫사랑이 있는” 편지와 일기장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클래식>이 첫 장면에서 충분한 변명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삼십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풍경. 푸른 그늘을 내리는 나무가 있고 쪽배가 떠다니는 첫사랑의 냇가가 매듭짓지 못한 인연을 평생 품고 산 두 사람을 위해 대신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이건 첫사랑, 세월조차 어떻게 하지 못할, 첫사랑이라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두 세대의 사랑을 편지와 메일로 엮어가는 <클래식>은 이처럼 아주 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를 창틀 삼아 60년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가 90년대로 빠져나오곤 한다. 그 창틀은, 주희와 지혜가 공유하는 창틀이 그러하듯, 지상의 먼지 한점 침입하지 못하는 무균질의 보호막이기도 하다.
<클래식>은 곽재용 감독의 전작 <비오는날 수채화>와 <엽기적인 그녀>를 포장지로 곱게 싸놓은 것처럼 출발한다. 가을색 시골길을 지나 티없이 하얀 비둘기가 아장거리는 창틀에 도달하면, 역시 티없는 눈동자와 입술을 가진 소녀가 “야, 야” 소리치면서 고운 비둘기들을 먼지털이개로 내몬다. 도복을 입고 상대가 코피나도록 발길질을 하는 이 터프한 소녀 지혜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뜻밖에도 “엄만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지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야. 사람이 죽으면 무지개 문을 지나서 천국으로 가는 거란다’”다. <클래식>이 ‘얄개’ 시리즈처럼 경쾌하면서도 순정이 감돌게 영화의 절반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 부조화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갈래머리에 연한 꽃무늬 블라우스라는, 너무나도 60년대 소녀적인 이미지로 치장한 주희는 쇠똥 무더기에서 파낸 쇠똥구리를 손에 들고 좋아하는 준하에게 호감을 느낀다. 얼마 뒤 같은 손에서 녹색 반딧불이 불빛이 빛나더라도, 한번의 웃음이 있었기 때문에, 옛 필름에서 집어내온 것 같은 이 장면을 호감으로 지켜볼 수 있다. 마음을 다칠 때마다 픽픽 쓰러지는 흰 얼굴의 키 큰 소년 태수도 대본소 시절 순정만화 같은 설정을 멍한 표정의 유머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태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상처를 길바닥에 버릴 때마다, 부모보다 친구가 더 큰 무게로 다가와 사랑을 포기하는 연인의 심정은 조금씩 마음에 사무치기 시작한다.
시나리오보다 영화에서 더 빛나는 <클래식>의 웃음과 휴식은 준하를 연기한 조승우에게 기대는 부분이 크다. 조승우는 <후아유>에서 그랬던 것처럼 낯뜨거울 수 있는 순간까지도 낙천적으로 감싸안는 넉넉한 분위기가 있다. 준하가 주희에게 마음을 쏟는 태수를 보며 느끼는 불안이나 주희를 다시 만난 뒤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기쁨까지도, 조승우는 작은 체구라는 콤플렉스가 앙증맞게 다가올 만큼 귀여운 연기로 마침표를 찍는다. 몇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거치면서 성숙해진 손예진의 연기도 조승우와 어울려 적절한 균형을 잡아준다.
이렇게 단점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장점이 예뻐 보이는 60년대 이야기에 비해, 지혜와 상민이 호흡을 맞추는 현재의 사랑 이야기는 다소 처지는 느낌이 있다. 현재의 이야기가 시나리오보다 분량이 줄어든 것은 영화를 간결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클래식>은 지혜와 상민이 만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질긴 인연의 서정시다. 목포 뒷골목을 뒤져 드물게 남아 있는 흙길을 찾아내고 나무로 만든 전봇대를 세우는 노력을 60년대에 쏟아부었다면, 90년대는 그에 맞는 감각과 사실성을 가졌어야 할 것이다. 태수와는 달리 얄밉게 사랑을 빼앗는 수경이나 우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을 바라봐주지 않는 남자에게만 안타까워하는 지혜가 변해버린 세월의 흔적일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이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흐느낌으로 터져나오고 말 연정을 다소곳하게 간직하기만 했던 부모들과 똑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그들은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내 마음 이제 다 알아버렸잖아!”라고 길게 늘여서 고백해야만 하는 것인지.
<클래식>은 60년대와 90년대를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90년대로 불러들인 60년대의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흑백사진 한장으로 시간을 되짚어가면서, 영화 <클래식> 역시 움직이지 않는 사진처럼 한 시대의 감성에 뿌리깊게 자리를 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 감성이 진정 60년대의 것이라 해도, 주희와 태수에게 재회의 기회를 제공하는 삽화로만 기능하는 유신반대시위처럼, 감성과 함께했을 시대적인 풍경을 걷어내버린 불구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곽재용 감독은 <엽기적인 그녀>에 자신만의 신파를 삽입해 진한 호소의 여운을 남긴 바 있다. <클래식>은 그 웃음과 신파의 분량이 뒤집어진 연애담이다. 창틀에 기대 앉은 주희와 지혜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매끄럽게 자리를 옮기다가도, 준하의 사랑이 눈물겹게 입증되는 후일담 부분에 이르러선 영화가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준하가 주희의 목걸이를 되찾기 위해 폭탄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때, 그 지순한 애정에 눈물이 차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엔 눈물이 너무 많이, 너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영화의 첫 부분, 삼십년 전 편지를 소리내 읽던 주희는 “촌스러워,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라고 중얼거린다. 어쩌면 이것은 이 영화의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김현정 para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