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고 있는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첨단 과학을 집대성하여 하늘 높이 솟은 ‘지구라트’의 완공을 경축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 지구라트의 주인인 레드 공은 옥상에 첨단무기를 장착하여 전세계를 지배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남은 것은 생체조직을 이용한 인조인간 실험으로 국제경찰에게 수배를 당한 로톤 박사가 만들어낼 로봇 티마의 완성이다. 티마는 지구라트의 데이터와 결합하여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켄이치는 삼촌인 반과 함께 로톤 박사를 찾아 메트로폴리스로 온다.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여 로봇 경찰인 페로를 소개받는다. 지하의 제 1구역을 뒤지던 켄이치와 삼촌은 로톤 박사의 연구소를 발견한다. 하지만 레드 공의 양아들인 로크가 한발 먼저 연구소에 침입하여 폭파시킨다. 로봇이 지배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타는 연구소로 뛰어든 켄이치는 티마를 발견하고 나오려는 순간 지하로 떨어진다. 한편 메트로폴리스는 로봇을 반대하는 과격단체와 레드 공을 제거하려는 시장의 음모가 어우러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 Review
<우주소년 아톰>과 <블랙 잭>의 데즈카 오사무 원작,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 각본, <은하철도 999>와 <환마대전>의 린 타로 감독. 이 이름들만으로도 <메트로폴리스>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신기원은 되풀이된다’는 서두의 선언처럼,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1949년 발표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메트로폴리스>로 이어지고, 다시 반 세기를 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눈을 매혹시킨다. 캐릭터도, 주제도 이미 낡아버린 듯한 <메트로폴리스>를 첨단의 테크놀로지는 어떻게 변모시켰을까 몇개의 숫자로 판단할 수는 있다. 디즈니를 동경했던 데즈카 오사무가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던 리미티드 기법 대신 <메트로폴리스>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초당 24 프레임의 풀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15만장 이상의 셀을 사용했다. 인간과는 다른 ‘기계’의 질감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첨단의 3D 기법이 사용되었다. 2D의 캐릭터와 3D의 배경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눈이 내리는 메트로폴리스의 풍경은 한없이 따뜻해 보인다.
오토모 가쓰히로는 원작의 얼개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층층마다 구역이 나뉘어져 철저하게 격리된 메트로폴리스의 상층에는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지배계급이 있고, 그 아래에는 지배계급을 뒤엎고 싶어하는 저항세력이 있다. 인간은 로봇과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차별과 증오의 감정만을 발산한다. 사실 <메트로폴리스>의 이야기는 뻔하다. 신에게 도전하다가 파멸을 맞은 바벨탑이 지구라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레드 공의 야심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고, 인간과 로봇은 화해할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우주소년 아톰>을 그린 이유도 그것이다. 인간과 로봇, 인간과 외계인, 서로 다른 존재의 이해와 화합을 희망하는 휴머니즘이 데즈카 오사무 만화의 사상이다. 오토모 가쓰히로는 ‘일본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오만과 욕망이 빚어내는 자멸의 풍경을 결합시켰다. 티마가 지구라트와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모습은 <아키라>에서 자기증식을 거듭하며 파멸하는 아키라의 모습과 닮아 있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오토모 가쓰히로는 변주를 그친다. 원작을 해체, 재구성하기에는 데즈카 오사무의 무게가 너무 컸던 것일까
<메트로폴리스>의 레드 공은 신에게 도전하기 위하여 초인을 원한다. 하지만 그 초인은 사람들이 경멸하는 로봇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로크가 레드 공을 거역하고 티마를 파괴하려 한 이유는 그것이다. 로봇이 지배자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다. 인간의 일을 빼앗거나, 아니면 인간의 심부름을 하던가. 상식적인 사고를 가졌고, 충분히 로봇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켄이치의 삼촌 반조차도, 이름이 없는 경찰 로봇에게 그가 기르던 개의 이름 페로를 붙여준다. 다만 켄이치만이 기계의 골격이 드러나더라도 변함없이 티마를 아껴준다. 티마는 단지 티마일 뿐이다. 인간이건, 로봇이건 중요하지 않다. <메트로폴리스>의 주제도 그것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수배 중인 로톤 박사를 찾아 메트로 폴리스로 온 반은 로톤 박사의 갑작스런 죽음의 배후를 의심한다.♣ 켄이치는 시종일관 티마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메트로폴리스>의 진미는 미래사회의 모습 그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메트로폴리스의 지상에 있다. 그뿐 아니라 스윙재즈를 기본으로 한 음악도 그 현란한 영상에 썩 어울린다.
<메트로폴리스>의 진미는 이야기가 아니다. 메트로폴리스의 지상은 인간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다. 문명의 발전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메트로폴리스의 지상에 있다. 3D와 2D를 절묘하게 섞은 <메트로폴리스>의 영상은 눈을 현혹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윙재즈를 기본으로 한 혼다 도시유키의 음악은 그 현란한 영상에 썩 어울린다. 스윙재즈의 전성기가 파시즘이 발흥하던 30년대였던 것처럼, <메트로폴리스>의 음악은 불안을 잊고 싶은 메트로폴리스 시민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절정은 지구라트가 파괴되는 순간 흐르는 <I can’t Stop Loving You>이다. 오우삼이 <페이스 오프>에서 치열한 총격전의 순간에 <Over the Rainbow>를 썼던 것처럼, <I can’t Stop Loving You>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는 인간의 소망을 그려낸다. 비록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서 뻔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