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정신분열과 몽유병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도니 다코(제이크 길렌할)는 어느 날 꿈에서 토끼 가면을 쓴 친구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 프랭크는 28일 6시간42분12초 뒤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아침이 되자 도니 다코는 골프장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팔뚝에는 ‘28064212’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집으로 가니 도니의 방에는 거대한 비행기 엔진이 떨어져 있다. 몽유병 때문에 떠돌지 않고 자고 있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뒤 도니 다코의 주변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학교 수도관의 메인 펌프가 박살나고, 머리에 도끼가 꽂힌 동상 앞에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했다’는 낙서가 쓰여 있다. ‘미래에서 왔다’는 프랭크의 말에 시간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도니 다코는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는 웜홀을 보게 된다.
■ Review
꿈속에서 종말의 때를 알게 된 소년. 그것이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종말을 예언하는 ‘사인’처럼, 도니 다코의 주변에는 범상치 않은 일들만 벌어진다. 방에 떨어진 비행기 엔진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연방 항공국에서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엔진이 없어진 비행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가슴의 웜홀을 통해서 정말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까 도니 다코는 정말 신의 소리를 들은 것이고, 종말이 다가오는 것일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관객은 이미 처음부터 도니 다코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담의인 셔만 박사가 도니 다코에게 최면을 걸자 프랭크가 나온다. 그렇다면 프랭크는 단지 도니의 무의식일 뿐일까
<도니 다코>의 전반부는 세상의 덫에 걸려 자신의 세계로 빠져든 사춘기 소년의 백일몽처럼 도발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보여지는 수많은 단서들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보여주기’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영화들 못지않게 복잡하다. 함께 선댄스영화제에 나왔던 <메멘토>는 시간의 앞과 뒤를 묶어, 거꾸로 배치한 구성이었다. 하지만 <메멘토>를 다시 편집하여 시간 순으로 돌려본다면 이해되지 않을 것은 없다. <메멘토>는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속임수와 단서들은 사실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니 다코>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니 다코>는 <메멘토>보다 치밀하게 시간의 앞뒤만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뒤섞고 인과관계를 뒤집어버린다. 원인이 결과이고, 결과는 원인이다. <도니 다코>의 지향은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스릴러영화로 보인다.
<도니 다코>의 시나리오를 들고 할리우드를 헤매던 감독 리처드 켈리는 제작자 드루 배리모어를 만난다. 리처드 켈리의 프로젝트에 대해 들은 드루 배리모어는 당장 제작을 결정한다. “난 당신의 머리 속이 궁금하다. 난 당신의 머리에 투자하겠다”는 말과 함께. <도니 다코>는 거의 난공불락에 가까운 게임이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리처드 켈리의 진의를 깨달을 수가 있다. 조각 맞추기 퍼즐을 할 때 절반을 넘어서면 대강의 그림이 그려진다. 마지막 한 조각은 ‘완전’을 이루어내는 화룡점정일 뿐이다. 하지만 <도니 다코>는 마지막 순간의 한 조각이 맞춰지기 전에는 빛을 발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서야 보여준 모든 단서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식스 센스>처럼 <도니 다코>는 마지막 하나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그 순간 흩어졌던 모든 것들이 하나로 꿰어진다. <도니 다코>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불안한 청춘의 희생과 구원의 판타지를 창조해낸다.
<도니 다코>는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수수께끼와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환상들로 가득하다.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증명된 것들만을 믿는다면 <도니 다코>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환상들을 믿는다면, <도니 다코>는 아주 낮게 말을 걸어온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던 욕망이 가져오는 거대한 창조라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리처드 켈리는 두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뒤 <도니 다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레이엄 그린의 <파괴자>를 읽은 뒤 받은 영감으로 <도니 다코>를 구상한 것이다. 보수주의가 극에 달했던 80년대 후반의 세계를 바꿔버리고, 아니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이 <도니 다코>에는 들어 있다. 단지 부모를 욕하고,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진정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리처드 켈리는 그 진리를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까지 리처드 켈리는 <도니 다코>가 스릴러인지, 공포영화인지, 청춘영화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관객에게 수수께끼를 안겨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의 해답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남성의 유일한 희생이, <도니 다코>의 난해하고도 황홀한 플롯을 만들어냈다. <도니 다코>의 그 기묘한 아름다움은 진리에 대한 갈구인 것이다. 그 답은 이미 당신도 알고 있다. 모른다고 도니는 물어본다. 언제나 끝날까 그 어리석은 질문에, 프랭크는 답한다. 이미 알고 있잖아.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