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야… 후미야… 후미야….”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죽어야했던 소녀는 레테의 강물을 마실 수 없었다. 사요리가 사국(死國)에서 흐느끼듯 외치는 ‘후미야’란 이름은 전율처럼 사국(四國)의 공기를 휘감는다. 머리를 길게 드리운 열여섯 소녀귀신의 응시를 담은 포스터는 언뜻 전형적인 일본공포영화인 듯 보이지만 <사국>의 알맹이는 지독한 러브스토리다. 옛 사랑을 묻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남자 앞에 나타난 죽은 여자의 집착적 사랑과 죽은 딸을 살려내기 위해 고행에 가까운 의식을 치르는 어머니의 광적인 사랑이 큰 맥. 여기에 88개 사찰을 죽은 자의 나이만큼 왼쪽으로 돌면 이승과 저승을 봉인하고 있던 결계가 허물어져 죽은 사람이 이승의 세계로 넘어온다는 ‘사카우치’라는 전설적인 의식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차 흥미를 더해간다. 그러나 스멀스멀한 공포감과 멜로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너무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에 치중한 나머지 맥이 빠지는 감이 없진 않다. 또한 사요리 어머니의 다소 갑작스럽고 황당한 퇴장도 설득력을 상실한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를 촬영한 시노타 노보루의 안정된 핸드헬드촬영과 영화의 주조를 이루는 로 키의 푸른색 조명은 냉기서린 음산한 기운을 조성하는 동시에 애절한 사랑을 더욱 신비롭게 채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포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장된 효과음보다는 잔잔한 피아노곡이 영화 전체를 뒤덮고 엔딩 크레디트에 사용되는 주제가 <나는 비가 되고 별이 된다>는 <원령공주>의 주제가를 부른 게라 요시카즈가 불렀다.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 상영작이며 국내 관객에겐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심야상영행사 ‘미드나이트스페셜’을 통해 첫선을 보였다.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