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여전히 지구 정복에 여념이 없는 닥터 이블은 골드멤버라는 인물을 끌어들이려 한다.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자신의 성기까지도 금으로 만들었다는 남자. 하지만 골드멤버 영입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오스틴 파워에게 붙잡힌다. 여왕에게 훈장을 받던 오스틴 파워는 자신의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직 스파이였던 아버지 나이젤 파워(마이클 케인)가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이다. 단서는 성기가 금으로 변해버린 수병들. 오스틴 파워는 감옥에 갇힌 닥터 이블을 찾아간다. 70년대의 골드멤버와 연관있다는 정보를 얻은 오스틴 파워는 70년대로 향한다. 뉴욕 맨해튼의 유명한 디스코클럽 스튜디오54로 간 오스틴 파워는 과거의 연인이자 이번 임무의 파트너가 될 폭시 클레오파트라(비욘세 놀즈)를 만난다.
■ Review
<오스틴 파워> 시리즈는 수많은 영화의 설정과 장면, 대사를 패러디한 첩보영화다. 성 해방 기운이 물씬 풍겼던 70년대의 자유분방한 첩보원 오스틴 파워. 007의 느끼한 요소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오스틴 파워>는 후안무치한 유머와 풍자로 관객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오스틴 파워’의 3번째 작품인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첫 장면부터 톰 크루즈와 기네스 팰트로, 스티븐 스필버그 등 막강한 카메오 출연진을 활용한 패러디의 명장면을 연출한다. 기상천외한 오프닝은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출신성분이 패러디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 영화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패러디는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즐기는 것이다.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캐릭터는 대체로 댄디한 모범생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기발한 오프닝의 매력을 느낄 수 없다. 톰 크루즈가 ‘우리 한번 할까’라고 히죽거리는 모습은 <오스틴 파워> 시리즈가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광경이다. 패러디는 기존의 고상하고, 엄숙한 척하는 것들을 마구 망가뜨리는 재미이기도 하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패러디영화의 지존답게, 기존의 모든 것을 베끼고 뒤집는 데 거리낌이 없다. 혹시 패러디의 진수를 한껏 보여주었던 전작들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달려가서 <오스틴 파워> 두편을 빌려오는 것이 좋다. 두편의 사건과 대사를 기억하는 것은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를 두배로 즐기는 필수요건이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상황과 사건, 대사는 전작들과 교묘하게 얽혀져 있다. 여성의 가슴 모양을 한 인공위성은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한 로켓을 떠올리게 하고, 나이젤 파워의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대사는 <스타워즈>를 패러디했던 2편의 대사를 다시 한번 뒤집어버린 것이다. 닥터 이블과 미니미, 이블의 아들 스코트의 얽히고 설킨 관계도 전작들을 보지 못했다면 제대로 웃을 수 없다. <오스틴 파워>에서 오스틴 파워와 섀그웰이 텐트 속에서 벌이던 그림자 놀이는, 오스틴 파워와 미니미가 병원의 커텐 뒤에서 벌이는 그림자 놀이로 바뀌었다. 뻔히 예상한 것이긴 하지만 미니미의 머리가 오스틴 파워의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제목부터 를 연상시킨다. 오스틴의 파트너인 폭시 클레오파트라는 70년대 크게 유행했던 흑인액션영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대표적인 여성주인공 폭시 브라운과 클레오파트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007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영화를 더하고, 거기에 <인디아나 존스>까지 얹어놓는다. 오스틴 파워가 구출해야 하는 아버지 나이젤 파워는 영국의 일급 첩보원이었고, 오스틴을 보살폈던 인물이다. 나이젤은 최고의 첩보원이 된 오스틴을 여전히 어린애 취급하고, 오스틴은 자신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아버지에게 반항적이 된다. 그건 바로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 나왔던 인디아나 존스와 그의 아버지 헨리 존스의 관계다. 나이젤 파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스틴 파워와 닥터 이블의 숙명의 대결까지도 방해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새로운 파트너는 70년대 문화의 아이콘, 흑인 액션영화와 디스코를 상징하는 여인 폭시 클레오파트라다.♣ 70년대 디스코클럽으로 날아간 오스틴 파워의 여성편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닥터 이블은 미니미와 결별하고 골드멤버를 영입하는 등 새 진용을 짠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는 언제나 한결같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조금 약하다. 물론 변주는 많이 있다. 닥터 이블과 미니미의 유대가 흔들리면서 미니미가 오스틴 파워에게 붙고, 나이젤 파워는 오스틴과 닥터 이블 사이에 새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문제는 골드멤버다. 골드멤버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보니,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사건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온갖 것들을 패러디하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웃음말고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약점이다. 패러디는 거듭할수록 처음 느꼈던 폭발적인 재미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언제든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새롭고 탄탄한 이야기에 패러디가 자연스럽게 결합될 때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한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폭발적이지는 않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