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절망의 나락을 지나도, 누구든 살아 있으라 <몬스터 볼>
2002-10-22

■ Story

교도관인 행크(빌리 밥 손튼)의 아버지 버크(피터 보일)도 교도관이었고, 아들인 소니(히스 레저)도 교도관이다. 이제는 은퇴한 버크는 날마다 범죄와 감옥에 관련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집 근처에서 놀고 있는 흑인 아이들을 내쫓으라고 행크를 재촉하는 게 일이다. 함께 근무하는 행크와 소니는 사형일정이 확정된 로렌스(퍼프 대디)의 마지막을 돌봐준다. 로렌스의 아내인 레티샤(할리 보는 아들 타이렐을 데리고 마지막 면회를 온다. 스트레스를 받은 소니는 로렌스를 사형집행장으로 호송하다가 토악질을 하고 만다. 로렌스의 사형집행이 끝난 뒤, 행크는 소니를 다그캑 두들겨맞던 소니는 총을 들고 행크를 위협하다가 자살해버린다. 비가 오던 어느 날, 행크는 타이렐이 교통 사고를 당해 울부짖던 레티샤를 태워준다. 아들들을 잃은 행크와 레티샤는 주저주저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 Review

<몬스터 볼>은 인연에 관한 영화다. 다른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행크와 레티샤가 만나 연인이 될 확률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교도관 행크. 웨이트리스로 겨우 살아가는 최하류층의 흑인 레티샤. 길에서 만나도,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해도 그들은 사적인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손가락에는 아주 두꺼운 붉은 실이 묶여 있었다. 레티샤는 행크처럼 아들을 잃었다. 아들의 장례식이 끝나고 소파에 묻은 피를 닦아냈던 행크는 다시 한번 자동차 시트에 묻은 타이렐의 피를 닦아낸다. 타이렐은 초콜릿을 좋아했고, 행크는 식당에 들만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시킨다. 레티샤와 행크는 로렌스의 마지막 순걀함께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아들들이 죽은 뒤에야, 그들은 인연을 알게 된다. 아무리 거역해도 소용없는 운명이 있듯이, 아무리 부인해도 지워지지 않는 인연이란 것이 있는 법이다. 그들의 삶의 방향이 바뀐 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버크는 행크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를 강요했다. 행크는 묵묵하게 아버지를 따랐다. 행크는 소니에게도 같은 길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니는 다르다. 편견없이 흑인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교도관을 하기에는 너무 유약하다. 행크가 소니를 폭행한 이유도 사실은, 죽으러 가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행크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아버지의 길을 따랐고, 왜곡되게 소니에게도 강요했다. 소니는 거부하고, 총을 들고 아버지를 위협하고 폭행한다. 그의 길은 할아버지와 다릿 소니는 행크에게 총을 겨누며 말한다. 나를 미워하죠 그래, 언제나.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소니는 자살한다. 소니는 죽음으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본 행크는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교도관을 그만두고, 주유소 주인이 된다. 우리가 주유소를 샀다고 말하는 행크에게, 버크는 쌀쌀맞게 답한다. 주유소는 우리가 아니라, 네 것이라고. 버크는 교도관만이 자신의 삶이고, 소유라고 말한다. 버크는 자신의 잘못이나 편견을 절대로 고치지 않는다. 철저하게 복종만을 강요한다. 소니는 죽음으로 저항을 했고, 아들의 죽음으로 행크는 변화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에야 일어설 힘을 얻었다고나 할까.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뒤, 행크와 레티샤는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빌리 밥 손튼과 할리 보치열한 정사장면은 그들이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생의 불꽃이다. 하지만 정사장면은 에로틱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아직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전이다. 남편과 아이를 차례로 잃은 레티샤는 유일하게 다정하게 대해주던 행크에게 부탁한다. “나를 그냥, 기분이라도 좋게 해줘요.” 인생의 모든 것을, 삶의 목적까지도 잃어버린 레티샤는 즐거움이나 기쁨 같은 것이 과연 자신에게 남아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 순행크도 알게 된다. 아직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기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행크와 레티샤는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 순행크와 레티샤의 세상은 달라지고, 그들의 운명은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 행크의 가족은 아버지-아들까지 3대가 모두 교도관이다. 아버지처럼 인종차별주의자인 행크는 묵묵히 교도관의 길을 걷지만, 유약한 아들 소니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반발한다.(왼쪽부터 첫번째 두번째)♣ 행크와 그의 아들 소니는 레티샤의 남편 로렌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아들들을 잃은 뒤,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레티샤와 행크가 만나 조금씩 가까워진다.(세번째 네번째)

<몬스터 볼>은 현란한 빛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극적인 사건들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낸다. 단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숨막히게 한다. 음악이 거의 없고, 도시의 영화들처럼 주변이 시끄럽지도 않다. 그들의 대화와 작은 생활 소음들만이 귓전에 울려댄다. 감동적인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없다. 분위기에 맞게 숨을 죽이고 <몬스터 볼>을 볼 수밖에 없고, 이야기들도 그렇게 흘러객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마크 포스터 감독은 관객이 사건에 몰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관객이 감정에 개입할 즈음이 되면 장면을 툭 끊어버린다. 소니가 자살을 하면 바로 장면이 바뀌며 장례식이 시작되고, 다시 소파에 묻은 소니의 피를 닦아내는 행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면들은 빠린전환되고, 인물들의 감정도 단지 사건과 상황에만 투영된다. 행크가 흑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특별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이 아니다. 자동차 수리를 맡기고, 아이들에게 세차를 맡기고 싶다는 일상적인 말들뿐이다. 그것으로 이해와 용서는 이루어지고, 행크와 이웃의 흑인들은 캇린된다.

<몬스터 볼>은 그냥 한 걸음씩 다가객 행크와 레티샤가 그렇듯이. 행크는 소니의 차를 레티샤에게 주고, 레티샤는 모자를 사준다. 버크가 레티샤에게 모욕을 주자 행크는 아버지를 양로원에 모신다. 모든 것은 단호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엄청난 격정의 폭풍이 몰아쳐도, 그들은 함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 그들의 사랑과 미래에 대한 멋진 말이나, 장면은 없다. 그들이 살아온 것처럼, 그들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험로를 여전히 헤쳐갈 것이다. 다만 그것은, 행복이다. 질긴 인연으로 만난 행크와 레티샤의 미래는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이미 모든 슬픔과 고통을 건너왔으므로.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