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가 일본의 스포츠이고 씨름이 한국의 스포츠인 것처럼 미국 정신을 구현하는 단 하나의 스포츠를 고르라면? 미식축구야말로 어깨를 부풀려서라도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힘의 논리와 뺏고 뺏기는 땅따먹기 전쟁의 쾌감과 승리자는 모든 것을 가진다는 미국식 게임의 정수이기도 할 법하다. 그 동네에서는 승리자에게 다시 한번 킥을 찰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트라이 포 포인트) 패자부활전이 있는 우리네의 씨름과는 정반대의 이치인 것. 잘하는 놈은 한번 더 밀어주는 규칙이 공평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사랑하고 할리우드가 밀어준 미식축구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카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나? 이미 <살롱>의 앤드루 오하이어가 지적했듯 <리멤버 타이탄>은 기괴한 나라의 기괴한 스포츠에 관한 기괴한 스포츠 필름이다. <조이>니 <애니 기븐 선데이>니 하는 미식축구영화들이 승리의 과정에 드라마의 얼개를 둔 정통 스포츠영화라면 <리멤버 타이탄>은 미국 내의 고질병인 인종문제와 스포츠 이야기를 버무렸다.
영화는 흑백인종통합이 된 1970년대 미국 남부의 고등학교 축구팀 타이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 부임한 허만 분은 흑인 감독이고, 그의 밑에는 백인 코치 빌 요스트와 덩치만 큰 아이들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흑백의 인종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곱상한 쿼터백 선샤인은 게이 같다고 놀림을 당하고 덩치가 남산만한 루이스는 자신이 저능아라 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한다. 흑인 감독 허만의 어린 딸들은 인형놀이에 관심이 많은 데 비해 똑같은 나이의 요스트 코치의 딸은 바지를 입고 미식축구에 열광한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편견에 <리멤버 타이탄>은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간결하고도 뻔하게 <리멤버 타이탄>은 흑과 백, 여자 대 남자의 갈등에 대해 서로 인간적인 관심과 교류를 가지라고 설파한다.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허만 감독이 아이들에게 서로의 취미와 가족 사항에 대해 조사해올 것을 명하는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주마간산식으로 <리멤버 타이탄>의 흑백 화합은 재빨리 그리고 구호적인 합일을 이룬다. 흑인들이 백인 레스토랑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소울을 부르고, 흑인 아이들은 컨트리로 을 부른다는 것(흑인이 백인 레스토랑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1960년대부터 흑백 차별에 대한 하나의 전설이었다). 그러니까 백인 위주의 미식축구팀에 대항하는 타이탄은 흡사 미국의 인종 차별주의 자체와 싸움한다는 이야기인데 정작 흑인들의 가난함을 이루는 사회적 배경과 현실은 영화의 배경으로조차 잘 등장하지 않는다.
덴젤의 목청어린 일장 연설 한번에 모든 일이 일사분란하게 돼가는 터, 이번에는 백악관이 거들고 나섰다. 흑인학교와 백인학교가 분리돼 있던 시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대해 2000년 개봉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홍보에 나선 것. 그 덕분에 <리멤버 타이탄>은 당시 개봉했던 R등급의 호러영화들을 제치고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트래픽>이 그러하듯 이것은 미국의 영화이고 미국의 문제이고 미국인들이 빠지는 감동의 물결에 관한 보고서이다. <리멤버 타이탄>은 더도 덜도 없는 정치권의 입맛에 딱 맞는다. 남과 북 단일 탁구팀이 이루어지면 충무로가 탐냈을 바로 화합과 대통합의 소재 말이다. 봇물 터지는 듯한 다원주의에 대한 요구로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70년대 클립을 삽입하며 영화는 실화가 바탕으로 하는 감동과 그 시절 그 모습의 향수에 빠지라고 권유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연골소리 요란하게 고막을 두드리고 게토레이 선전이 무색하게 미식축구 장면은 화려하지만 승리는 또한 마음먹기에 달렸고 인종차별 역시 그러하다니. 인종차별이 구호라면 인종통합 역시 구호이다. 모든 게 예측 수순을 밟는 통에 <리멤버 타이탄>은 보고 나면 타이탄은커녕 주인공인 덴젤조차 기억하기 힘들다. 특히 <허리케인 카터>에서 안광이 형형했던 덴젤 워싱턴의 일장 연설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때이지 이번에는 빈 주먹을 날렸다.
그러니 타이탄을 기억하라고? 우주를 쥐고 흔들던 거대한 거인족 타이탄들의 신화에 빠지기에 <리멤버 타이탄>에는 캐릭터의 자리가 비좁은 전형적인 스포츠영화의 모양새를 띤다. <베가번스의 전설>이 그러하듯 사랑도 담고 인간에 대한 교정주의적 시선도 담고 인생과 비슷한 스포츠까지 이야기하는 데도 말이다. 여전히 <리멤버 타이탄>은 디즈니의 선한 사람들이 만든 ‘애니 기븐 스쿨 데이’에 관한 동화모음집의 구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미식축구에 대해1. 미식축구의 공격팀은 라인멘 5명, 쿼터백 1명, 러닝백 2명, 리시버 3명으로 구성이 된다. 라인맨(Line Man)은 센터 1명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2명의 가드와 태클이 있는데 이들은 공격팀의 최전방에서 수비팀을 저지하며 공격플레이를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볼을 들고 플레이는 하지 않으며 주로 몸이 크고 몸싸움에 능하다. 러닝백(Running Back)은 쿼터백으로부터 볼을 전달받아 상대 진영으로 전진하는 역할을 한다, 몸이 작지만 날렵하다. 리시버(Receiver)는 쿼터백으로부터 앞으로 던져진 볼(Forward Pass)을 받아 전진을 한다. 키가 크고 빠르다. 쿼터백(Quarter Back)은 센터로부터 볼을 전달받아 러닝백에게 볼을 전달하거나 리시버에게 볼을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팀의 기둥이 되는 선수이며 빠르고, 볼도 잘 던질 수 있어야 한다.
2. 로즈볼은 미국 최대의 대학풋볼대회이다. 매년 1월1일 캘리포니아주의 장미 특산지인 패서디나에서 열리는데, 10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려든다. 시합은 경기장이 사발(bowl)을 닮아 볼 게임이라고 하며, 그 개최지에 알맞은 명물(특산품 등)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 예를 들면, 뉴올리언스의 슈거볼, 마이애미의 오렌지볼, 패서디나의 로즈볼, 하와이의 파인애플볼 등이다.
3.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미식축구선수 중 한 사람이 그린 패커스의 쿼터백인 브렛 파브르. 그는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메리의 옛 애인인 미식축구선수로 나온다. 벤 스틸러(주인공 테드)가 왜 브렛 바브르를 택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메리는 “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를 좋아하거든”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니까 김혜수에게 안재욱이 “왜 선동렬을 택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 “응, 난 롯데 자이언츠를 더 좋아하거든”이라고 대답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