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고등학교의 마지막 방학을 맞이한 테녹(디에고 루나)과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갑부 집안의 테녹과 편모 슬하의 훌리오는, 환경은 다르지만 섹스와 대마초란 공통의 관심사에 탐닉하기 바쁜 단짝들이다. 각자의 여자친구들이 유럽여행을 떠난 사이, 새로운 상대를 찾던 두 사람은 테녹 집안의 파티에서 미모의 스페인 여인 루이자(마리벨 베르두)를 만난다. 연상의 루이자는 테녹 외사촌의 부인. 루이자에게 반한 테녹과 훌리오는 ‘천국의 입’이란 환상적인 해변이 있다는 거짓말을 지어내며 여행을 제안하고, 남편의 불륜에 상심한 루이자는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Review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해변을 향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두 소년과 연상의 미인. 심상치 않은 동행을 내세운 <이투마마>는, 리비도와 여행을 바퀴 삼아 굴러가는 성장 로드무비다. 10대들의 성적 욕망에 대한 탐사를 앞세워 성장의 궤적을 좇는 출발은 <포키스>나 <아메리칸 파이> 같은 10대 섹스코미디물과 닮아 있지만, 멕시코와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필터를 거친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이투마마>는 정액을 들이마시는 화장실 유머나 인터넷 섹스 생중계 같은 극적인 이벤트 없이, 한층 적나라하면서도 사실적인 성에 대한 묘사와 탐색으로 성숙의 비밀에 눈뜨는 멕시코 청춘들의 자화상을 담아낸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무런 설명없이 침실로 직행한 카메라는 섹스에 열중하는 테녹과 그의 여자친구 안나의 나신을 비춘다. 뒤이어 훌리오와 세실리아가 부모의 눈을 피해 섹스를 나누는 침실을 엿보는 동안, 두쌍의 연인들은 서로 배신하지 말자며 달콤한 약속을 나누지만 그저 말뿐. 혈기왕성한 그들의 몸이 마음을 배반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공항에서 여자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선 그날 밤부터 데이트가 안 풀리자, “여름 내내 이럴까봐 아찔한” 테녹과 훌리오. 샤워장에서 서로의 성기를 비교하며 낄낄대고, 수영장 다이빙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아는 여자애들을 떠올리며 자위를 하는 이들은 많은 청춘영화에서 봐왔듯 성적 욕구에 충실한 10대들이다.
하지만 루이자와 함께 해변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심 어떻게 하면 그녀와 잘 수 있을까에 골몰하던 이들의 단순한 욕망에는 차츰 복잡다단한 결이 생겨난다. “섹스를 할 때 어떻게 해?”라는 질문에 앞다퉈 여자친구들과의 성적 경험과 자신의 노하우를 떠벌리는 그들에게, 루이자는 상대를 소중히 하라고 일러준다. 루이자의 사고사한 첫사랑 얘기에서부터 섹스 체위에 이르는 솔직한 수다, 자기 만족뿐 아니라 배려와 교감으로 더욱 충만해지는 섹스의 경험은 소년들에게 또 다른 성숙의 문을 열어 보인다. 순수하리만치 맹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들의 욕망은, 할머니의 병수발과 결혼생활에 파묻혀 지내온 루이자에게 잊고 살아온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는 계기이기도. 그래서 세 사람의 여정은 자신을 재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두 소년과 한 여인.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천국의 입`으로 향하면서, 세 사람은 성을 통해 미묘한 감정의 파고에 휘말린다.♣ 테녹과 안나는 서로 다른 사람과 자지 말자고 약속하지만 왕성한 리비도는 테녹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테녹과 훌리오는 루이자의 몸에 반해 함께 여행에 나서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섹스뿐 아니라 상대를 소중히 하라는 그녀의 본심을 깨달아 간다. 두 사람과 "공평하게" 섹스를 나눈 루이자에게는, 현재를 충분히 즐겨야 할 만한 비밀이 있다.
MPAA에서는 등급외 판정을 받았으나, 영화의 맥락 안에서 섹스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표현대로 “R등급을 받는 미국영화들에 강요되는 음란한 둘러대기보다는 더 솔직하고 건전한” 느낌이다. 국내 개봉판에서는 성기 및 음모노출 방지를 위한 보카시 동그라미가 몇번씩 등장할 만큼 젊은 육체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카메라 역시, 적나라한 만큼 사실적이다. 외사촌 형수와 섹스를 하고, 두 친구가 한 여자와 관계를 맺는 설정이 일견 불경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성을 매개로 매혹과 교감, 배신과 혼란이 뒤섞인 희로애락의 파고를 깨달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파도타기 같은 것, 그냥 바다에 몸을 맡기라”는 루이자의 말처럼, 현재의 욕망에 충실한 영화는 그저 부분적이거나 상대적인 진실을 알 수 있을 뿐 정답이 없는 관계와 삶의 불가해함을 드러내고 있다. “너의 엄마와도 잤다”는 의미의 제목이, 그저 말초적인 도발을 위한 의도는 아니었던 셈이다.
좀 독특한 성적 탐사와 성장의 기록이었을 이야기는, 멕시코의 현재를 둘러보는 여행이란 점에서 또 다른 힘을 얻는다. 수시로 끼어드는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션은 인물들과 멕시코사회에 대한 촌평을 들려주고, 여행길의 풍경은 멕시코의 자연과 사람들을 담고 있다. 테녹은 “상한 음식을 빈민층에 팔아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은” 부패한 상류층의 아들이며, 훌리오는 농민 출신의 중하층 집안의 아들이다. 테녹 집안의 파티에 참석했던 대통령은 그의 측근 중 하나가 연관된 학살사건 대책회의 때문에 빨리 돌아가고, 훌리오는 누나와 공유하는 차를 빌리고자 정치과 학생이자 좌파운동가인 누나의 시위현장을 찾는다. 하늘과 노을, 녹음의 빛깔이 유난히 또렷한 멕시코의 시골로 나선 테녹 일행 앞에는 검문을 벌이는 경찰이, 가난한 농가의 할머니가 스쳐간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펼쳐지는 해변, ‘천국의 입’은 지상 낙원같지만, 4대째 어부 집안으로 일행을 안내한 추이 가족은 머잖아 대형 관광호텔이 건립될 그곳에서 이사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결코 너무 근엄해지는 법 없이, 쿠아론은 세 인물의 여정 사이사이 풍요와 빈곤, 계층 간의 격차가 공존하는 멕시코를 담아내고 있다. 그의 전작을 함께 해온 촬영감독 에마뉘엘 루베츠키의 유려한 영상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이투마마>는 할리우드에서 <소공녀> <위대한 유산>을 찍었던 쿠아론이 10년 만에 고국 멕시코로 돌아가서 찍은 영화. 동생 카를로스와 각본을 함께 썼으며,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성숙한 섹스 코미디에 멕시코 사회에 대한 관찰을 버무린 영화는, 지난해 6월 멕시코 영화의 오프닝 기록을 경신하며 성공을 거뒀다. 미국에서도 올해 3월에 개봉했으며, “최고의 로드 트립 영화”(<워싱턴포스트>), “R등급에는 너무 성숙하고, 사려깊고 솔직하면서도 포르노그라피적이지 않은, 효율적인 성인 등급이 필요한 완벽한 사례”(<시카고 선타임즈>) 등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제작비의 두배가 넘는 1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