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6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테마파크를 찾는다. 30대 중반의 성형외과 의사 강재(김정학)는 지루한 맞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황노인(안석환)과 고아인 찬희(박준화)는 양로원과 고아원의 단체 관광을 따라, ‘범생이’와 ‘날라리’로 앙숙인 고교생 준구(천정명)와 현우(이종수)는 각자 친구들과 휴일을 보내기 위해서. 사파리를 둘러보는 버스에 함께 탄 이들은 성난 곰의 습격을 받는다. 마침 현장을 지나던 테마파크 직원 주희(김보경)는, 떨어뜨린 인형을 주우려고 머뭇대는 찬희를 구하려다 이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철거 예정인 ‘아유레디’관으로 피신한 이들은, 이상한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자신들의 악몽과 마주한다.
■ Review
본격적인 판타지어드벤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아 유 레디?>는 야심찬 포석을 깔고 출발한 영화다. 홍보 문구에서 비교항으로 언급된 <인디아나 존스>나 <쥬만지> <미이라> 같은 할리우드산 모험극의 판타지를 살려내고, 스펙터클 속에 잊혀지기 쉬운 드라마의 재미도 놓치지 않겠다는 야심. 운명적인 사랑과 환생을 모티브로 삼은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선이 고운 멜로드라마와 판타지의 신선한 조합을 선보였던 작가와 제작사, 80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구비한 출발은 그 끝을 궁금해할 만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막이 열리면 신비로운 달빛 아래로 놀이기구에서 터져나오는 함성, 화사하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반짝이는 테마파크로 들어서는 영화의 도입부. 흡사 동화의 나라 같은 놀이공원의 전경과 철거를 앞둔 낡고 음산한 분위기의 아유레디관 입구는 판타지어드벤처에 제법 어울리는 무대로 보인다. 그럴듯한 무대에서 시동을 건 <아 유 레디?>의 어드벤처를 빚어내는 것은, 보물 찾기나 전설의 부활이 아니라 인물 개개인에 내재된 트라우마다. 모든 아이들이 원장과 같은 성을 쓰는 고아원에 방치된 현실 대신 자신만의 성과 가족을 꿈꾸는 고아 찬희, 낯선 살의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는 성형외과 의사 강재,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꾼 남동생에 애증을 품은 동물연구원 주희. 영화는 제각각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악몽 같은 기억을 궤도삼아 롤러코스터식 모험극을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롤러코스터는, 궤도를 돌면서 좀처럼 가속도를 얻지 못한다. 세대와 가짓수가 다양하긴 하지만, 단편적으로 나열되는 사연에 인물들의 체온을 전하는 단서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소대원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던 30년여 전 베트남의 격전장으로 되돌아간 황노인은, “딱 한 발짝 뒤로 물러섰을 뿐”이라는 대사에 실린 회한의 무게를 납득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고 죽음으로 뛰어든다. 준구와 현우는 모범생과 날라리의 피상적인 갈등 묘사에 비해 과분한 우정을, 자신들의 악몽과는 별 상관이 없는 우연한 시련 속에서 깨닫는다. 영화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묘사된 강재의 악몽은, 고등학교 때 생선장수의 아들이란 이유로 짝사랑에게 모욕당한 뒤 초라한 과거와 절연하고자 발버둥친 결과.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태희의 교감을 살려냈던 꼼꼼한 디테일이 뒷받침됐더라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드러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인물들의 비장함은 번번이 관객을 앞서간다.
일상에 잠재된 악몽과 맞서는 인간들의 드라마로 어드벤처영화에 내실을 기하겠다는 기획의도가 제대로 살았더라면, 많은 제작비와 공을 들인 볼거리도 더 빛을 발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홍빛 하늘에 폭발과 총격이 난무하는 밀림의 베트남전이나 무너져내리는 바위덩이 사이로 질주하는 자동차, 강재와 주희의 악몽이 펼쳐지는 미로의 성과 같은 고스트 맨션 등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어드벤처의 스펙터클 자체는 눈길을 끄는 시도. 절벽을 깎아내고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CG와 특수효과에만 25억원 이상을 들였고, 세계에서 몇대 안 되고 대여료만 3억원을 상회한다는 소니의 HD 파나비전 카메라를 동원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을 덜고 촬영 원본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CG 작업을 할 수 있다는 HD 카메라의 활용과, 완성도 높은 3D애니메이션 <큐빅스>로 화제를 모았던 시네픽스의 작업으로 실사영상과 CG의 이음새는 그럴듯하지만, 스펙터클과 드라마의 결합은 유기적이지 못하다. 난데없이 암벽이 무너지자 막사 옆에 대기한 듯 서 있는 차를 타고 도망치는 식의 설정은 인물들이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를 찾아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결국 <아 유 레디?>는 낯선 장르적 접근과 규모를 키운 스펙터클에 기댄 일련의 블록버스터들과 같은 함정을 피해가지 못한다. 타이의 오지까지 찾아가 땀을 흘린 제작진과 성실함이 엿보이는 배우들의 노력은 안타깝지만, 어드벤처영화의 구경거리나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새로운 일보라는 시도에 만족하기엔 80억원의 수업료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게 문제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