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인간을 바라봐왔다. 부모와 자식, 혈연과 비혈연, 함께 산 시간과 기억의 무게를 탐구해 온 그의 관심사는 작품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은 그의 탐구 영역을 미래 사회로 확장한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휴머노이드라는 새로운 존재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인간이 앞으로 어떤 세계와 마주하게 될지를 질문한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SF가 등장하는 이유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아야세 하루카, 다이고)는 아들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카케루(구와키 리무)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이 존재는 죽은 아이를 대신하는 용도로 제조됐지만, 가족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점차 자신만의 위치를 만들어간다. 카케루는 가족구성원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영화는 기억과 애도, 공감과 이해, 직시와 치유의 문제를 차례로 꺼내 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상자 속의 양’을 핵심 모티프로 활용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 눈앞의 형상 너머를 상상하는 일은 카케루를 보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휴머노이드 안의 무엇을 보게 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인간 고유의 능력과 한계를 함께 들여다본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려는 시도에 있다. 인간과 인공, 자연과 기술, 현재와 미래, 상실과 상생이라는 영역들이 작품 곳곳에서 마주친다. 영화에서 카케루는 인간을 단순 모방한 개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는 동시에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가족들은 죽은 아들을 떠올리면서도 점차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관계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묻는다. 공유한 시간과 경험이 있다면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고레에다 특유의 시선이 드러난다.
다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다소 많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상실로 인한 감정의 근원이나 인간과 인공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한 작품에 담겨 있다 보니 여러 갈래의 질문이 동시에 전개되면서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마다 메시지가 들어 있으며 오히려 그 열의가 관객 스스로 생각하는 여백을 줄이기도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 질문을 다루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성형 AI와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과 산업 전반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오늘, 인간과 인공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이야기다. 고레에다는 이러한 변화 한가운데서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며 생존할지, 또 새롭게 등장한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묻는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본격적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시점, 그 간극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이어보려는 시도. 인간과 인공, 현재와 미래, 상실과 상생이 만나는 접점에서 고레에다는 다시 한번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CLOSE-UP
휴머노이드 카케루는 어느 날 아버지의 목공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늙은 목수는 흑송을 자른 조각 하나를 건네며 소라껍데기처럼 귀에 대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인간이 만든 존재와 자연이 빚은 존재가 마주 보며 나무와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인간과 인공, 현재와 미래라는 영화의 두 축이 선명하게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세계가 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고레에다의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CHECK THIS MOVIE
함께 볼 영화로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 이 작품은 휴머노이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설정부터 아이 부모의 직업, 중정이 있는 가옥 구조, 상실에서 출발하는 서사까지 <상자 속의 양>과 여러 지점에서 닮아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과 인공의 관계를 다루지만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상자 속의 양>이 인간과 인공이 공존하는 미래를 내다본다면 <애프터 양>은 존재의 흔적을 따라가며 관계의 근원을 깊이 들여다본다. 같은 소재에서 출발해도 전혀 다른 질문과 감정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