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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선의로 완성된 구원의 서사, <악마가 이사왔다>
조현나 2025-08-13

퇴사한 뒤로 길구(안보현)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껏 주눅 든 길구는 그에게 쉽게 말 붙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구는 새벽녘에 엘리베이터에서 선지와 마주친다. 조용하던 낮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화려하게 꾸민 채 등장한 선지는 길구에게 적대심을 보이며 공격적으로 대한다. 선지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길구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선지의 뒤를 좇던 길구는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에게 발각되는데, 장수는 길구의 우직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밤마다 집 밖으로 나서는 선지의 보호자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한다. 이유인즉 악마가 선지의 몸에 들어온 상태여서 선지가 낮에는 평범하게 생활하다가도 새벽 2시만 되면 악마가 활동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지와 함께하며 길구는 그의 비밀에 관해 더 자세히 알게 된다.

2019년 데뷔작 <엑시트>로 9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주목해야 할 신인 연출자로 떠오른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차기작 <악마가 이사왔다>로 돌아왔다. 두 번째 장편에서도 배우 임윤아, <엑시트>의 제작진과 합을 맞추는 동시에 배우 안보현, 성동일, 주현영 등 새로운 얼굴이 합류해 신선함을 더했다. 유독가스 유출로 인한 도시 탈출을 묘사한 <엑시트>와 달리 <악마가 이사왔다>는 길구와 선지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배경을 좁힌다.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 또한 길구와 선지, 선지의 가족으로 간결하게 꾸려 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두드러지는 것은 임윤아, 안보현의 변신이다. 임윤아는 밤마다 상반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지를 연기하며 1인2역에 도전했다. ‘낮의 선지’는 그의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자주 보아왔던 맑은 이미지를 고수하지만 ‘밤의 선지’로 분할 때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거침없는 에너지를 선보인다. 헤어스타일, 의상, 목소리 톤 등에 차이를 둬 반전을 꾀하는 것은 <악마가 이사왔다>의 볼거리다. 밤의 선지가 스스로를 “상급 악마”라고 칭함에도 간헐적으로 비치는 따뜻한 면모는 길구가 호기심을 잃지 않고 그를 탐구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한편 안보현은 영화 <베테랑2>, 드라마 <재벌X형사> 등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에서 벗어나 유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분했던 유미(김고은)의 옛 연인 구웅과 유사한 인상이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코미디, 로맨스, 오컬트물의 특색을 아우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위기의 순간은 도래하지만 단순한 선악 구도 안에서 인물들의 관계를 풀어내지도 않는다. 악의를 가진 인물이 없고, 과도한 희생을 강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물들에게서 성장과 구원의 서사를 이끌어낸다. 자신의 이익과 연계되지 않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타인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인물들의 선함은 <악마가 이사왔다>를 추동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엑시트> 이전에 <악마가 이사왔다>의 각본을 먼저 집필한 것을 고려할 때, 이상근 감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물과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잠시간 단조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긴 하나 선지, 길구의 독특한 새벽의 데이트가 담긴 <악마가 이사왔다>는 편안한 재미를 선사한다.

close-up

선지와 길구의 첫 만남. 단아하고 조용하던 선지는 외관과 성격 모두 180도 달라진 채 길구에게 달려든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길구가 한발 물러났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길구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밤마다 변화하는 선지를 좇는다. <악마가 이사왔다>가 주목하는 두 주인공의 성장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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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감독 이상근, 2019

장르적 특성과 목적 전부 다르지만, <악마가 이사왔다>는 <엑시트>의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가 재난 상황에서 취한 태도를 떠오르게 한다. 약자를 지나치지 않고 돕던 두 사람은 선지의 비밀에 귀를 기울이던 길구의 모습과 맞물린다. 이상근 감독의 두 장편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가 창작자로서 신뢰하는 인간의 선의에 관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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