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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독백이 대화로 이어진다면, 죽음이 아닌 생을 꿈꿔볼 수 있기에, <연소일기>
조현나 2024-11-13

고등학교 선생인 정 선생(노진업)에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계기가 생긴다. 담당 반 쓰레기통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교감은 대입을 앞둔 시기에 일을 키우지 말라고 제안하지만 정 선생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다. 다소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은 좀처럼 특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정 선생의 시야 밖에 있던 아이들, 이를테면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등생의 마음에도 슬픔이 잔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와 학생들의 글씨체를 일일이 대조해보던 중 정 선생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과거엔 학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외면받았던 10살 소년 요우제(황재락)가 자리한다. 요우제는 본인이 바라는 모습의 어른이 되길 꿈꾸며 꾸준히 일기를 쓰는데, 주변인들의 멸시가 지속되면서 점점 희망이 사라져간다.

탁역겸 감독은 장편 데뷔작 <연소일기>에서 자살과 우울증으로 표상되는 학생, 어른의 내면의 상처를 꺼내 보인다. 성적과 자기 가치를 동일시하기 쉬운 학창 시기는 소년 요우제에게도 그 시절을 지나온 정 선생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요우제와 정 선생 반 학생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는다는 건 입시제도의 성과주의가 세대를 걸쳐 공명하는 뿌리 깊은 문제임을 증명한다.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들이 자신의 상처를 내레이션으로 고백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편지, 유서 등의 글을 낭독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주인공인 정 선생과 요우제의 감정은 관객에게 밀도 있게 전달된다. 그러나 반대로 극 중 현실에선 주인공들의 말이 다른 인물들에게 닿지 않고 허공에 흩어진다. 연결과 단절이라는 영화 내외부의 괴리가 인물들이 처한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요우제는 일기에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칭하며 생을 마감했고, 정 선생의 반 학생도 같은 내용의 유서를 썼다. 수십년을 사이에 두고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지언정 영화는 같은 결과를 가리키지 않는다. 정 선생은 학교에선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된 교육자로 거듭나는 한편, 개인의 삶에선 한번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과거의 슬픔을 전 부인에게 처음으로 온전히 털어놓고자 시도한다. 내면의 고통을 꺼내 보이고 기꺼이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소중한 이를 지켜낼 수 있다. <연소일기>엔 홍콩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우린 변화해나갈 수 있다고 주창하는, 한 신인 창작자의 외침이 세심하게 깃들어 있다. 정 선생을 연기한 노진업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요우제와 그의 천재 동생 요우쥔 역을 맡은 황재락, 하백염 아역배우의 존재감이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2023 대만금마장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과 관객상, 2024 홍콩금상장영화제, 2024 홍콩감독조합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한국 관객들에게 먼저 소개된 바 있다.

close-up

영화에 묘사된 요우제의 일상 중 가장 온기가 느껴지는 건 그가 천 선생에게서 피아노를 배울 때다. 아버지는 요우제의 피아노 실력마저 동생 요우쥔과 비교하지만, 천 선생은 사람마다 재능은 다른 법이라며 요우제가 얼마나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지 실력 뒤의 노력을 칭찬해준다. 그런 천 선생과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히며, 10살 소년 요우제가 죽음이 아닌 생의 미래를 그리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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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2021

에반 핸슨은 매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 용기가 없어 친구들 앞에 제대로 나서지도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못하지만, 편지를 작성하며 내일은 다르게 흘러가길 소망한다. 마찬가지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코너에게 자신의 편지를 빼앗기게 되는데, 코너가 자살한 후 그의 가족은 에반이 코너와 절친한 친구였다고 오해한다. 그 오해를 기점으로 에반은 주변인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요우제와 에반은 죄어드는 현실의 돌파구로 편지 형식의 일기를 택한다. 그 일기가 두 인물에게 가져다준 미래는 상반되지만, 글을 기반으로 내레이션 혹은 노래의 형태로 전달되는 둘의 진솔한 감정은 관객과 극 중 주인공 사이의 공감대를 긴밀하게 형성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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