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연인 바넬(카디 마네)과 아다마(마마두 디알로). 세네갈 북부의 한 외진 마을에서 사는 둘은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했지만 이제야 부부가 되었다. 이제 막 피어오른 둘의 사랑 앞에는 난관이 가득하다. 우선 둘이 사는 마을은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이어진 사막화와 가뭄으로 인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사랑을 나눌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는 환경이다. 이 둘의 복잡한 사정도 문제다. 아다마는 촌장이었던 형 예로가 죽자 촌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바넬도 마을의 가부장적인 규율과 전통에 속박당해 있다. 그녀는 촌장의 핏줄을 이을 아기를 임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외면당한다. 전통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예로와 결혼한 과거 또한 그녀를 옥죈다. 둘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오래전부터 사랑의 도피를 준비했다. 아다마는 촌장이 되기를 거부하며 모래 폭풍에 파묻힌 마을 외곽의 집으로 이사하려고 새벽마다 모래를 파낸다. 저주받은 집이라는 소문이 도는 곳이지만 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떠날 채비가 끝나갈 즈음 가뭄이 더 심해져 마을의 소가 하나둘 죽어간다. 마을 주민은 그가 운명을 거스르고 기우제에 오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힐난한다. 아다마가 죄책감을 느껴 전통에 순응하자 마법같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바넬은 그렇게 마을의 일원이 된 아다마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바넬과 아다마>는 라마타 툴라예 사이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76회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다.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감독은 <다호메이>로 2024년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마티 디오프와 마찬가지로 세네갈계로 프랑스에서 성장해 전문 영화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감독 중 하나로 불린다. 그만큼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연출과 곳곳에 깃든 감독의 영화적 취향이 인상적인 영화다. 자연과 인간의 공명, 다채로운 빛 활용과 생동감 있는 촬영, 시적 내레이션 등 테런스 맬릭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 있어서 황홀감을 안긴다. 배우의 연기와 연인을 포착하는 숏의 구도에서는 베리 젱킨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불친절한 내러티브 사이에 깃든 마르케스풍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그리스 비극, 토니 모리슨과 마이아 앤절로의 영향을 받은 흑인 여성 서사와 멜로드라마 등 온갖 장르가 차하는 설정도 매혹적이다. 전통이 현대를 흡수하는 세네갈의 현실을 은유하는 듯한 영화 속 마을은 이슬람과 세네갈 토착 신앙이 혼재해 있고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문명의 흔적이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가의 소설 <백년의 고독> 속 마을 마콘도와 닮았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스토리텔링을 펼치기에 더없이 적절한 공간이다. 메데이아와 안티고네 등 그리스 비극 속 운명에 저항하는 강한 여성상에 남성적 폭력에 저항하는 현대 흑인 문학의 여성 캐릭터를 더한 바넬도 영화에 긴장을 더한다. 사막 폭풍 등의 자연 이미지도 기후 위기로 보일 맥락을 더해 사유를 확장한다. 이처럼 온갖 레퍼런스를 저만의 색깔을 덧입히며 소화하는 힘 하나만으로도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감독이다. 모든 숏에 힘이 들어간 나머지 호흡 조절이 아쉽지만 그마저 감독의 야심으로 볼만하다.
close-up
아다마가 마을의 외곽으로 향하는 장면. 급작스럽게 덮친 새 떼나 죽은 소 떼 등 죽음의 이미지로 아다마가 마을을 떠나는 행위가 마치 신의 분노를 사는 듯한 뉘앙스를 그려내며 초자연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임에도 이를 모르는 마을 사람의 눈에는 신의 분노로 보인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두 인물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전통의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영화의 비극성이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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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틱스> 감독 마티 디오프, 2019201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흑인 여성감독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바넬과 아다마>가 픽션영화의 자장에 머무는 반면 <애틀랜틱스>는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향을 받은 실험영화의 자장에 머물러 있다. <애틀랜틱스>는 유령이라는 설정과 함께 도시화의 진행과 임금 체불 등의 문제를 직접 그려낸다는 점에서도 우화에 가까운 <바넬과 아다마>와 대척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