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뼈대는 도시 직장인 문경과 비구니 가은이 문경의 고즈넉한 풍경을 후경 삼아 펼치는 로드무비다. 전반부 30분 정도는 문경과 초월이 중심이 된 오피스 드라마로서 근래 사회의 구조적인 고용 문제나 직장 내 갑질 등을 건드리지만, 본격적인 영화의 진의는 시골길에서 이뤄지는 자그마한 소동과 조용조용한 대화로 완성된다. 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강아지 길순인데, 주요 인물들의 동선과 목적지가 길순이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이동 등으로 추동되기 때문이다. 문경과 가은이 만나는 유랑 할매 역시 길순이와 닮은 강아지를 잃어버린 경험 때문에 두 사람을 집에 들이고 손녀 유랑의 이야기를 터놓으며 교감하게 된다. 커다란 자극이나 서스펜스는 없더라도 순간순간 맨발로 흙바닥을 걷는 걸음과 숨겨뒀던 진심을 고백하는 나긋한 목소리, 드넓은 문경의 풍광만으로도 2시간의 러닝타임이 꽤 충만하게 채워진다.
<방문자>부터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로 이어진 ‘관계 3부작’을 내놓으며 독립영화계에서 고유의 스타일을 펼쳐온 신동일 감독의 신작이다. 이후 꽤 긴 공백을 거쳐 현대사회의 가족극 <컴, 투게더>를 내놓았고 <청산, 유수>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문경> 역시 신동일의 스타일이라 부를 만한 이질적인 존재들의 관계 성립, 사회적 이슈의 후경화, 인위적인 굴곡 없이 자연스레 흐르는 서사 등이 돋보인다. 이전 신동일 감독이 그리는 관계의 구도가 외국인노동자와 여고생(<반두비>), 외환은행 딜러 부르주아와 노동자계급의 부부(<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으로 계급의 차이에 집중했던 것과 다르게 <문경>은 조금 다른 존재들일지라도 충분히 합일할 수 있고 서로의 인연을 기분 좋게 마칠 수 있다는 낙관의 전언을 남긴다. 또한 신동일 감독은 그간 캐릭터 설정에 죽음의 모티프를 꾸준히 다뤄오기도 했는데, 이번엔 가은의 전사에 얽힌 죽음의 의미가 실제 우리 사회가 겪었던 사회적 죽음의 여파로 이어지며 한층 더 확장되기도 한다. <문경>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된 바 있다.
close-up
전반부 도심에서 펼쳐지는 문경, 초월의 이야기와 후반부 문경에서 일어나는 문경, 가은의 이야기는 공간의 촬영 방식이나 인물들의 대화 속도, 화면의 색감까지 여실히 다른 차이를 보인다. 두 공간의 층위가 영화에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살피면 더욱 흥미로운 감상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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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감독 임순례, 2018
도시에서의 삶에 염증을 느낀 한 청년이 시골에 돌아와 치유의 시간을 가진다는 뼈대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와 일견 겹쳐 보이기도 한다.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리틀 포레스트>가 주인공 혜원(김태리)의 내면 변화에 가장 집중하는 단독 극에 가까웠다면 <문경>은 인물들의 관계 일변에 더 초점을 두는 관계 극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치유의 시간이 필요함을 두 영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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