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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섯 번째 방’, 상담자이자 내담자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선, 대구의 노라
정재현 2024-06-05

<다섯 번째 방>의 내레이터인 전찬영 감독이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린다. 직접 차를 운전해 기차역에 전찬영 감독을 마중 나온 건 어머니 김효정씨다. 전찬영 감독은 조부모 소유의 50년 된 2층 양옥집에서 조부모와 부모, 두 동생과 함께 평생 살았다. 이 집의 가장은 김효정씨다. 아버지 전성씨의 소파 사업이 실패하자 김효정씨가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경제권이 생기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 문옥이씨는 며느리 김효정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1층의 가장 큰 방을 내준다. 김효정 상담사는 1층 큰 방을 상담소이자 연구실로 활용하지만 이곳을 맘 편히 사용할 수 없다. 특히 남편 전성씨가 불쑥불쑥 김효정 상담사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며 업무와 심리 안정감에 지장을 준다. 김효정 상담사는 노력 끝에 1층과 분리된 2층 방을 개인 공간으로 얻어낸다. 처음으로 식구들의 거주 공간과 분리된 곳에 자신의 오롯한 공간을 갖게 된 김효정 상담사는 그곳을 가꾸는 데 여념이 없다. 어느 날 집의 소유자인 문옥이씨는 집의 지분 1/4을 큰딸에게 상속할 것임을 통보한다. 김효정 상담사는 30년간 시댁살이를 했어도 이같은 결정을 가족 구성원과 상의 없이 독단으로 전달한 시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투쟁하는 어머니와 그런 모친을 카메라에 담는 딸, 그 사이로 아버지 전성씨와 가족구성원들이 겪어온 갈등과 불화의 역사가 틈입한다.

단편 <바보아빠>(2014), <집 속의 집 속의 집>(2017) 등으로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전찬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전작들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면 <다섯 번째 방>은 어머니 김효정 상담사의 삶을 다룬다. <다섯 번째 방>은 러닝타임 80분의 짧은 다큐멘터리지만 밀도가 상당하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영화는 5년여의 촬영 기간을 두고 왜 어머니가 ‘자기만의 방’을 확보하길 원하는지에 관해 여러 가설을 경유하며 연구한다. 연구의 중핵은 김효정 상담사의 가정 내 역학 구도다. 영화는 어머니가 양육된 가정환경을 살피고, 가부장제 이념이 지배하는 시집살이 동안 어머니가 처한 20여년의 역할론을 되짚는다. 또한 심리상담사이자 가정폭력 예방 강사로 활동하는 어머니의 노동현장을 취재하며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한 이유와 명분을 함께 찾아간다. 그래서 김효정 상담사는 경제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상담사이자 내담자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고 가정 내 변혁을 수차례 주도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정 내 대소사를 담는 연출 방식이다. 영화는 상속과 독립 등 문제가 산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시점이 전찬영 감독이 카메라를 집 내에 들이민 이후임을 분명히 해둔다. 누군가는 이를 다큐멘터리스트의 천운이라 쉽게 깎아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섯 번째 방>의 연출과 촬영은 지금 카메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이 언제든 어느 가정에서든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일임을 확신한 채 정공법을 택한다. 카메라의 파급력과 위계, 그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인지한 연출의 태도가 특히 미덥다.

CLOSE-UP

“엄마보다는 안 좋아도 아빠도 좋은 사람 맞제? 나는 그거면 돼.” 단편에서부터 아버지 전성씨와 반목한 세월을 담은 전찬영 감독은 <다섯 번째 방>을 만들고 집하는 동안 자신이 든 카메라가 어쩌면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지 고민한다. 영화는 아버지가 자행한 폭력과 폭언, 이로 인한 가정의 문제를 직시한다. 재단의 의도 없이 솔직하게 담아낸 아버지의 단면이 오히려 인물의 입체성을 강화한다. 그리고 전성씨 또한 딸의 영화에서 악인 혹은 가해자로 자리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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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뿔났다> 작가 김수현, 2008

60대에 독립을 선언한 여성이 16년 전 KBS 주말드라마에 있었다. 한자(김혜자)는 집안의 여러 일을 처리하다 문득 42년간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남들은 변변한 직업을 갖춘 딸, 부잣집으로 시집간 딸, 자상한 남편을 둔 한자의 인생을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쉽게 넘겨짚는다. 한자는 뒤늦은 자신의 생일 잔치에서 공표한다. “그치만 대부분은… 대부분은, 고달프고, 우울했었어. 할머니, 할아버지, 너희 아빠, 그리고 너희들. 모두 다 내가 움직여야 하는 내 책임.” <인형의 집>의 노라를 창조한 헨리크 입센이 들어도 놀랄 통찰이 66부작 드라마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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