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인 화림(김고은)과 화림을 따르는 법사 봉길(이도현)이 LA에서 한 의뢰를 받는다. 의뢰인은 초호화 저택에 사는 부잣집의 장손이다. 자신의 아이를 비롯한 집안사람들이 자꾸만 의문의 유전병을 앓고 있으나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화림에게 해결을 부탁한 것이다. 화림은 집안 조상의 묫자리가 원인임을 눈치챈 후 한국에 돌아와서 풍수사 상덕(최민식)을 찾아 협업을 제안한다. 상덕과 그의 오랜 동료인 장의사 영근(유해진)은 화림과 봉길에게 합류하고 네 사람은 팀을 꾸려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중 상덕은 묫자리가 워낙 나쁘다며 파묘를 거절한다. 이에 화림은 파묘와 동시에 대살굿을 진행하자는 묘안을 내놓고 넷은 결국 파묘 작업에 돌입한다. 여차저차 작업이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이 묫자리엔 예상치 못한 비밀이 담겨 있었고 네 사람은 미지의 존재들과 본격적으로 대적하게 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한국형 오컬트영화의 장인으로 자리 잡은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검은 사제들>의 김 신부(김윤석), <사바하>의 박 목사(이정재)가 그랬듯이 상덕과 화림을 비롯한 네 주연이 모종의 심령현상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그간 영화의 소재로 적용했던 각종 종교를 넘어 풍수지리와 민속신앙으로까지 범주를 넓혔다. 전작에도 무당들이 종종 등장하긴 했으나 이번처럼 본격적인 굿판을 벌인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신들린 듯이 춤추면서 굿판을 주도하는 김고은 배우의 호연이 대번에 눈에 띈다. 첫 영화 주연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이도현 배우의 안정적인 존재감도 인상적이다.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장발을 질끈 묶은 파격적 외양이 튀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최민식, 유해진 배우 역시 각계의 베테랑이자 일상의 인간미를 풍기는 두 중년의 면모를 적절히 조율한다. <검은 사제들>의 최 부제(강동원)나 <사바하>의 요셉(이다윗)과 같은 조수 격의 인물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이들인 덕에 네 사람의 협업을 보는 맛이 전작들보다도 더 통쾌하다.
외견상으로 오컬트물이지만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처럼 훌륭한 서스펜스를 자랑한다. 실제 전투가 이뤄질 때의 액션 요소도 적절히 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현실감 없이 붕 뜨거나 유치하게 흘러가는 순간은 없다. 오컬트를 “현실 판타지”라고 명명했던 장재현 감독의 작품답다. 풍수지리나 무속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처음 보는 도구들의 용처, 파묘나 굿판의 현실적인 진행 과정은 영화의 현실감을 더욱더 크게 살린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감과 조금은 동떨어질 수 있는 요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모쪼록 관객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갈릴 만한 측면으로 보인다. 올해 열린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초청됐다.
“미신이다? 사기다? 다 X까라 그래.”상덕의 대사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풍수사에 대해 설명할 때 말하는 부분이다. 상덕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덕은 종종 ‘직업윤리’란 단어를 쓰면서 직업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 대사는 <파묘>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파묘>는 흔히 미신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심령현상이나 초현실적인 순간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주저 없이 오컬트풍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CHECK POINT
<곡성> 감독 나홍진, 2016아마 <파묘>와 함께 가장 자주 거론되는 영화일 것 같다. 최근의 한국영화 중에선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을 제외하고 가장 이름난 오컬트물인 탓이다. 다만 두 영화의 방향성은 꽤 다르다. <곡성>이 진실 사이를 관념적으로 오가며 고민하는 영화라면, <파묘>는 물리적인 위험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쪽에 가깝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영화의 차이점을 복기하고 고심하다보면 <파묘>를 감상하는 재미가 더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