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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튼 아카데미’, 결함뿐인 삶에 비탄이 몰아쳐도, 오늘은 내 곁의 약한 이를 지키리
정재현 2024-02-21

1970년 12월. 사립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다가올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교내 전체가 들떠 있다. 하지만 융통성 없는 역사 교사 폴(폴 지어마티)은 학생들의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기 마지막 날까지 학생들에게 낙제점을 날리고 수업을 진행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방학 당번 교사인 폴은 갖가지 사유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학교에 잔류한 학생들에게 휴식은커녕 학기중과 다름없는 커리큘럼을 난사하며 괴롭힌다. 몇몇 학생들은 기회가 닿아 끝내 학교 탈출에 성공하지만 까칠하고 껄렁한 우등생 앵거스(도미닉 세사)는 귀향이 불발돼 급식소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와 함께 연휴 끝까지 바튼 아카데미에 남는다. 세 사람은 난방도 안되고 시설도 낡은 텅 빈 학교에서 겨우내 아옹다옹하면서 지내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던 방학 중반 즈음, 폴은 마음에 차지 않지만 앵거스와 메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차를 몰고 학교 밖으로 짧은 현장체험학습을 떠난다.

<바튼 아카데미>는 구체적으로 1970년이라는 시대를 명시한 영화다. 구체적인 시대 배경의 설정은 당시의 향수를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바튼 아카데미>는 70년대 미국영화 특유의 촬영과 편집으로 작품 전체를 세공하며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형식 자체를 복원해낸다. 70년대 음악으로 가득 채운 사운드트랙과 당시 등장한 수많은 미국영화들을 절묘하게 흉내낸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에 특히 주목할 것을 권한다. 다소 긴 러닝타임을 든든히 떠받치는 요소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세 배우 각각의 연기력과 배우간 화학작용이다.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신예 도미닉 세사의 안정적인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폴 지어마티는 배배 꼬인 심사의 소유자인 폴에 희극적 면모와 연민의 몸짓을 더하며 관객을 사로잡고 또 울린다. 주목할 만한 낯선 배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또한 메리가 골몰한 깊은 상실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리의 사려 깊은 품성과 넉넉한 정까지 생생히 구현해낸다. 유수의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두 배우는 올 3월 열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각각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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