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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가 찍는 ‘얼굴’의 아름다움이 시대를 초월한다
이우빈 2024-02-21

19세기 일본의 에도시대, 두 청년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와 츄지(간이치로)의 직업은 분뇨수거업자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의 인분을 수거하고 그것을 농사꾼에게 파는 일을 한다. 두 젊은이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차별받으면서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웃음과 낭만을 잃지 않는다. 그러던 중 둘은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구로키 하루)와 우연히 연을 맺게 된다. 세 청춘은 은근히 서로의 일상을 도우면서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도 스멀스멀 피워낸다. 오키쿠가 모종의 사건으로 가족과 목소리를 잃으며 칩거하게 되지만 세 사람의 유대와 사랑은 끊기지 않는다. 오키쿠는 용기를 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고 다시금 안온한 일상을 꾸려간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분뇨업자이고 화면에 종종 인분이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는 그 무엇보다 깨끗하다. 폭력과 차별, 불시의 죽음이 만연한 19세기이지만 세 청춘의 활력과 싱그러움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영화는 추악한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순수한 세계를 지키려는 젊은이들의 소박하되 큰 이야기를 담는다. <오키쿠와 세계>는 좁은 화면비의 흑백 화면은 서민들의 삶을 다뤘던 20세기의 고전 시대극을 떠올리게 한다. 흑백 화면에 내리는 비와 눈 아래,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솔직한 대화와 감정에선 요즘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온난한 정취가 풍긴다.

잔잔하고 정적인 촬영 방식도 인물들의 일상에 흐르는 은은한 낙관과 평화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서사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유장하고 능숙한 호흡을 지닌 영화다. 이 여유로운 호흡 중에 불현듯 화면을 꽉 채우는 오키쿠의 맑은 얼굴이 단연코 <오키쿠와 세계>의 백미다. <얼굴> <신 의리없는 전쟁> 등으로 20세기 끝 무렵 일본영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다룬 <케이티>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30번째 작품이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마스터즈 섹션에서 상영됐다.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잡지 <기네마 준보>가 선정한 제97회 일본영화 베스트10의 1위와 각본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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