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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일 부코’, 인간의 표면과 자연의 내부를 겹쳐 세계를 그리다
오진우(평론가) 2024-01-31

1960년대 이탈리아 밀라노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있을 무렵, 한 동굴 탐험대가 남부 칼라브리아 내륙의 한 시골 마을로 향한다. 이들은 대략 700m에 달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비푸르토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 온 것이다. 조용했던 마을은 이들 덕분에 떠들썩해지기 시작한다. 탐험대는 동굴 입구에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탐험을 시작한다. 이 모습을 산 중턱에서 양치기 노인이 내려다본다.<일 부코>는 1961년 유럽에서 가장 깊은 동굴인 비푸르토 동굴을 탐험한 동굴학자들의 모습을 재현한 영화다. 감독의 전작인 <네번>(2010)처럼 이 영화에도 대사가 없다. 자막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이 오직 이미지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시적인 영화다. <네번>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인간과 동물과 자연을 병치시킴으로써 형상화했다면, <일 부코>는 인간의 표면과 자연의 내부를 겹침으로써 관객에게 심상을 만드는 시도를 한다. 영화 후반부에 죽음이 임박한 노인과 탐험대가 그려나가는 동굴 내부가 교차편집되면서 동굴 지도는 인체 해부도처럼 비추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미지로만 승부를 보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들리는 여러 소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동굴학자들의 연구 대상인 동굴이란 환경 때문에 영화는 더욱더 사운드에 섬세한 연출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탐험대는 빛과 소리에 의지해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을 더듬거리며 내부를 파악한다. 동굴의 조건과 이를 담아내는 영화의 방식은 영화를 보는 관람 조건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것을 추천한다.얼핏 동굴학자들의 탐험이 순수한 열정에 기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을 강조하려면 영화는 산악 탐험을 비교군으로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고층 빌딩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영화는 주제 의식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방향만 다를 뿐 높이와 깊이는 매한가지다. 그것은 인간의 권력에의 욕망이자 자본 혹은 제국의 욕망이다. 영화는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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