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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화란’, 아득히 먼 각자의 이상향으로
조현나 2023-10-11

술만 마시면 폭력을 가하는 의붓아버지로 인해 연규(홍사빈)에게 집은 지옥과 다름없다. 아직 17살 학생인 탓에 독립을 하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하겠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차근히 돈을 모으는 중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이복 여동생 하얀(김형서)을 괴롭히던 학생들에게 연규가 대신 보복을 가한다. 그로 인해 정학을 당하고 합의금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 사장에게 부탁해보지만 결국 돈을 가불받지 못하고, 대화를 듣던 손님 치건(송중기)이 선뜻 연규에게 돈을 건넨다. 치건은 한 조직의 중간 보스였고,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빠르게 적응한 연규는 능력을 인정받고 점점 더 위험한 사건으로 내몰리게 된다.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화란>은 연규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그리는 것에 집중한다. 가장 비중 있게 묘사되는 것은 연규와 치건의 관계다. 한 동네에서 자랐고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범죄의 길로 들어섰으며 현실에 환멸을 느끼는 연규에게서 치건은 자신의 유년기를 발견한다. 반대로 연규는 버팀목을 자처하는 치건에게서 은연중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둘의 감정선을 느린 속도로 끈기 있게 유지하는 것이 영화가 지닌 장점이지만, 반대로 기존 누아르물에서 익숙하게 봐온 설정과 전개란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저마다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는데 특히 배우 홍사빈은 극 중 진폭이 가장 넓은 연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치건으로 분한 배우 송중기는 전에 본 적 없던 거칠고 묵직한 에너지를 꺼내 보인다. 배우 김형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시종 건조한 모습으로 아버지와 연규, 그리고 연규와 치건의 관계를 매개하는 하얀을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치건의 부하 승무는 기능적인 역할이지만, 배우 정재광이 승무가 쥔 극의 퍼즐을 명확하게 끼워 맞춘다. 등장인물들에겐 각자가 희망하는 이상향이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네덜란드의 음역어인 화란을 제목으로 사용하는 역설이 더욱 와닿는 이유다. 제7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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