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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비’, 남성성의 폐단을 전복하는 여성들의 명징한 목소리
정재현 2023-07-26

수많은 바비 인형들과 바비의 짝 켄 인형들이 사는 바비랜드는 매일 핑크빛 행복으로 가득하다. 이곳에 사는 수많은 바비 인형 중 하나인 전형적 바비(마고 로비)의 삶 또한 그렇다. 하루하루 놀이와 파티 속에 살던 바비는 문득 생의 유한함에 관해 고민한다. 죽음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바비는 어느 날 이상함을 느낀다. 구취와 피로를 느끼고, 힐에 최적화되어 있던 발도 형태가 변한다. 바비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딴 성에 사는 이상한 바비(케이트 매키넌)를 찾아가고, 이상한 바비는 문제 해결을 위해 바비에게 현실 세계에 사는 인간 주인을 찾아가보라고 조언한다.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바비의 여정에는 언제나 바비와 짝으로 붙어다니는 켄(라이언 고슬링)이 함께한다. 바비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주인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를 만남과 동시에, 바비랜드와 달리 현실의 인간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체감한다. 한편 켄은 현실 세계에선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바비랜드로 돌아가 이제껏 살던 방식과 다른 미래를 건설할 마음을 품는다.

<바비>는 연출하고 쓴 작품마다 각종 영화제와 영화상에서 주목을 받은 감독 겸 배우 그레타 거윅이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에 이어 연출한 세 번째 장편영화다. 여기에 <아이, 토냐> <프라미싱 영 우먼> 등 설령 비행(非行)일지라도 마음속에 품은 강렬한 야심을 거리낌 없이 착수해나가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해온 마고 로비가 주연과 제작을 맡았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아도 <바비>가 설파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메시지는 명징하다. 보디 셰이밍을 비롯한 루키즘(외모를 가치의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의 문제를 자각한 바비들이,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유독한 남성성의 폐단을 지적하며 이를 전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직접적인 대사로 이슈를 성토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초중반에 등장하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헬렌 미렌이라는 점도 주목해볼 만한다. 젊은 시절의 헬렌 미렌을 영화계가 소비했던 방식과 이를 본인만의 주관과 의식으로 돌파해갔던 헬렌 미렌의 행보를 생각해본다면, 그 또한 <바비>의 내레이터에 더없이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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