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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랑하는 당신에게’, 몸의 언어로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정예인 2023-05-31

유일한 사랑이었던 리즈(도미니크 레이몽)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제르맹(프랑수아 베를레앙)의 일상은 변한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손녀는 제르맹을 돌보기 위해 시간표를 세우고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온다. 식사는 했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묻는 목소리에 제르맹은 얼버무리며 답할 뿐이다. 자신을 병든 늙은이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유쾌하지만은 않아서다. 제르맹은 걱정 가득한 가족 몰래 비밀스러운 작업에 착수하기로 한다. 리즈와 주고받은 약속, 남은 이가 먼저 떠난 상대의 끝맺지 못한 일을 대신 완수해주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리즈가 생전에 현대무용 공연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기억한 제르맹은 리즈가 몸담았던 무용단을 찾아가 사연을 설명하며 무용단에 합류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당연히 거절하리라는 제르맹의 예측과 달리 무용단은 그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한발 나아가 제르맹을 주인공으로 세운 공연까지 선보이려 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실의에 빠진 한 남성의 일상이 춤과 어우러지며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찬찬히 풀어간다. 맨몸을 부대끼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기 몸의 무게중심을 찾는 방법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제르맹은 점차 움직임이 주는 기쁨을 익혀간다. 현대무용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제르맹의 곁에는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라 리보트의 공력이 숨어 있다. 라 리보트는 무용가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본인의 무용단과 무대를 꾸민다. 델핀 리허리시 감독은 라 리보트의 공연을 담아내며 현대무용을 영화적으로 변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제르맹의 무뚝뚝한 움직임은 춤의 존재 방식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춤은 타인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공간일 수 있다는 것. 지금 곁에 자리하지 않더라도 움직임 속에서 몸과 마음을 포개어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제르맹이 춤을 추며 자신과 리즈를 온전히 느끼게 될 때 오프닝 시퀀스에서 던진 메시지는 선명히 전달된다. “바라는 일은 절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했던 것들은 언제나 기대를 배반하고, 바라지도 않은 것이 나타나 전체가 상쇄된다.” 2022년 제75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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