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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애프터썬’, 사진적 아름다움과 강렬한 몸짓이 뒤섞인 기억의 정중동
김소미 2023-02-03

<애프터썬>은 오래된 캠코더로 찍어두었던 비디오의 몇 조각일 수도, 어느 생일 전야에 30대 소피(셀리아 롤슨 홀)가 꾼 아득한 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떠오른 기억이 한 사람의 출처와도 같다는 것이다. 영화는 11살 소피(프랭키 코리오)와 젊은 아빠 캘럼(폴 메스칼)이 튀르키예의 그저 그런 리조트에서 보낸 며칠의 여름휴가를 그러모은다. 이것은 한때 단란했으나 이제는 사라져버린 부녀 관계를 추억하는 노스탤지어 영화일까? 요컨대 <애프터썬>은 부녀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시차를 두고 발생한 정신적 교감의 가능성 혹은 정신 건강 그 자체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는 편이 적확해 보인다. 다정했으나 한없이 불안정하고 우울했던 아버지 캘럼에 대한 늦은 이해는, 섬세한 풍경으로 조직된 기억의 나열을 통해 조용하게 고백된다.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백인 <애프터썬>은 인물의 심리적 여정을 따라 강퍅하게 접혔다 펼쳐지는 아코디언식 회고와 거리가 멀다. 밀레니얼의 기억은 카메라의 그것과 닮아서, 주인공 소피는 훌륭한 사진적 이미지로 이 시절을 편집한다. 서사적 요건들은 비워내고 주관적 인상을 요체로 삼는 영화임에도, 취약한 어른과 아이가 낯선 장소에서 공존하는 순간이 자주 서늘한 긴장을 발생시킨다. 그리움과 화해의 지층이 부드럽게 뒤섞이는 이 영화의 끝에서 소피와 캘럼은 말 그대로 분투를 벌인다. 샬롯 웰스 감독의 데뷔작 <애프터썬>에 왜 그토록 후한 찬사와 지지가 쏟아졌는지 단번에 납득시키는, 가히 감정적 괴력을 지닌 클라이맥스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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