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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수프와 이데올로기', 식구(食口)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김수영 2022-10-19

학교 운동장에 일렬로 선 마을 사람들이 경찰의 기관총에 쓰러졌다. 제주 4·3사건을 겪은 강정희씨는 여든의 나이에도 18살에 본 풍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전작 <디어 평양> <가족의 나라>로 분단의 흔적이 여실한 가족사를 들여다본 양영희 감독의 작업은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도 이어진다. 4·3을 겪은 강정희씨의 기억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통과한 한국의 역사를 짚는다. 4·3을 피해 오사카로 건너온 어머니는 조총련 활동에 매진하며 세 아들을 북에 보냈다. 한국 정부를 부인하고 북한에 의지한 마음의 기저에는 4·3의 참혹한 기억이 깔려 있었다. 영화에서 양영희 감독이 4·3을 알아가는 일은 어머니의 삶과 그의 선택을 이해해나가는 일과 같다. 연애도 결혼도 일본인은 절대 안된다던 어머니는 도쿄에서 온 사위 카오루를 위해 닭백숙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 음식을 만들고 한자리에서 먹는 행위는 일상적이지만 어머니가 평생 물적으로 지원하고 심적으로 지지했던 북에 있는 가족들과는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영화 초반에 아픈 기억이나마 활기 띤 얼굴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강정희씨는 치매로 점차 말을 잃어간다. 그 얼굴에서 상처를 준 한국과 가보지 못한 북한 어디에도 고향을 두지 못했던 한 사람의 삶과 애환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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